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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맛있게

여름방학을 앞둔 며칠 전이었다. 방학식을 하는 날은 수업을 안 하고 점심도 안 먹고 일찍 집에 간다고 하니 아이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왜 수업 안 해요?” 한다. 방학식 날의 통상적인 일정인데 3학년 아이들은 아직 학교 일상에 익숙지 않아서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수업을 안 하는 것에 실망감을 내비치는 아이들은 내 교직생애에 처음 본다. “얘들아, 수업 안 하면 좋은 거잖아? 너희들은 공부하는 게 좋니? 그럼 수업할까?” 했더니, “네! 수업해요.”라고 답한다. 모든 아이들의 속마음이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집단의 의사는 항상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몇몇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하지만 소수일지언정 학구적 열의를 지닌 학생들이 집단의 분위기를 지배해가는 것은 정말 고무적인 현상이다. 놀라운 것은 나머..

전복과 반전의 순간

전복과 반전의 순간(1~2권) 음악평론가 강헌의 책인데 정말 좋다. 1,2권 합쳐 700쪽 가까이 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의 매력은, 1. 제목에서 보듯 ‘사회 변혁’이란 키워드로 음악사에 접근하는 참신함이다. 무릇 예술의 본령은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혁신성에 있다. 당대의 훌륭한 예술가들은 예외 없이 이 혁신성을 좇았는데 우리가 배운 제도권의 교육에서는 예술가들의 이런 정신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사회 모순에 대한 음악가들의 분노와 고뇌를 엿볼 수 있다. 2. 뮤지션들의 저항적 삶과 관련하여 흔히 음악 장르에 따른 편견을 갖기 쉽다. 이를테면 클래식 음악가들은 체제에 순응했고 록 뮤지션들은 저항적이라는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

이성과 감성 2020.09.17

본질주의의 허구

지난 글에서 똑같은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집단의 외연을 확장하여 ‘구조’ 혹은 ‘시스템’으로 생각할 수 있다. 교실은 학교라는 큰 집단 속에 있고 학교는 사회 혹은 교육제도라는 시스템 속에서 기능한다. 선한 구조 속에서는 선한 인성이 형성되고 악한 구조 속에서는 악한 인성이 형성된다. 그 예로 지난 글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적인 교직원이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작은 학교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풍경을 소개했다. 개인이 속한 구조의 단위가 크면 클수록 구조로부터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교실 차원에서 “더불어 살아가기”를 실천해도 학교 차원에서 경쟁을 강조하면 교실에서 추구한 공동체적 삶이 손상되기 마련이다. 또한 아무리 선한 학교..

이론과 실천 2020.09.17

서곡

지붕 위에서 못 내려오는 소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그 따뜻한 마음 크게 공감한다. 인간에게 내재한 선한 마음으로 맹자의 측은지심이 이런 게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내려오면 뭐하나 어차피 제 명대로 못 살 텐데... ㅠ 소 입장에서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도살장에서 참혹하게 죽는 것 가운데 어느 게 더 나쁠까? 조난당한 소를 애처롭게 생각하는 10분의 1의 마음으로 동물의 불행과 환경파괴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육식이 나쁘다는 말은 않겠다. 나도 좀 전에 저녁 식사로 소고기 맛있게 먹었다. 다만, 육식을 좀 줄였으면 한다. 과다한 육식문화로 인해 너무 많은 소, 돼지, 닭 등이 사육된다. 너무 많은 가축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도 나쁘지만 가축이 내뿜는 암모니아가 대기오..

전체는 부분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다

방학한 지 1주일이 지났다. 3월부터 석 달간 온라인으로 만나고 6.3.(수)에 등교개학을 했으니 아이들과 직접 부대낀 것은 두 달이 채 안 된다. 하지만 올해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인상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다. 2017년부터 4년 연속으로 3학년을 맡고 있다. 전임교(도량초)와 현임교에서 각각 2년씩 맡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홀수 해에는 너무 힘들었고 짝수 해에는 너무 행복한 것으로 현격한 대조를 이루는 점이다. 전자의 아이들이 나쁘고 후자의 아이들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초3 아이들은 모두 순박하다. 똑같은 학교와 똑같은 담임교사에 똑같은 3학년인데 홀짝으로 현격한 대조를 이루는 원인이 뭘까 생각해본다. 전문용어로, 사회경제적 수준(socio-economic status, SES)..

이론과 실천 2020.09.17

별다방에서

별다방 창가 자리에 앉아 빗방울 소리 들으며 책 읽고 있다. 나는 누구를 만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면 비싼 돈 주고 커피 마시러 이런 곳에 잘 오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전교조에서 온라인 대의원대회 참가한 사람에게 별다방 쿠폰이 2장 지급된 지라 그걸 소비하기 위해 아내랑 왔다. 창밖을 보며 둘이 나란히 앉아 각자 읽을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시각적인 풍경은 그지 없이 좋다. 비 피해 입은 분들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내 이름에 비(우)가 들어 있어서인지 나는 비를 정말 좋아한다. 쇼팽의 명곡이 말해주듯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음악이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정취에 치명적인 방훼꾼이 우리 뒷편에 있어서 기분을 잡쳤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4인의 남자 사람들이 수다를 떠는데 너무 시끄럽다. ..

삶과 교육 2020.09.17

언터처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흥미있는 영화 [언터처블]을 보면서 미국 사회에 대해 세 가지 면에서 놀랐다. 마피아로 상징되는 무지막지한 폭력배들이 활개 치고 다니며 백주대로에 잔인한 범죄를 쉽게 벌이는 것도 충격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극악무도한 무리들이 공권력의 비호 하에 법망을 피해가는 점이다. 하지만 강직한 성향의 엘리엇 네스 수사관은 끊임없는 살해 협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네스의 별명이 ‘언터처블 the untouchable’인데, 문자 그대로 ‘접촉하기 어려운’ 즉 매수하기 어려운 사람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 번째로 놀라운 것이 이 글의 주제와 관계있다. 그것은 네스 수사관이 알 카포네에 수갑을 채울 때 죄목이 살인이나 마약매매 따위가 아니라 ‘탈세’였..

과학적 개념 vs 자생적 개념

우리의 사고가 발달하는 것은 개념을 통해서이다. 개념은 책이나 여러 가지 지적 경로를 통해 획득되지만, 개인이 나름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형성해가는 경우도 많다. 비고츠키는 이렇게 형성된 개념을 ‘자생적 개념’라 일컬었다. (원어로는 ‘spontaneous concept’인데 흔히 ‘일상적 개념’으로 옮기곤 한다.) 자생적 개념은 스스로 길어 올린 지식체계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이 개념을 스스로 형성하기까지 나름 정교한 논리와 사고를 작동시켰기에 그 과정에서 내면에 일정한 정신의 근육이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생적 개념은 어떤 객관적인 팩트에 근거하지 않고 주관적 사고에 의거하여 자의적으로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 오류를 내포할 위험이 있다. 자생적 개념의 이러한 한계에 대비되는 개념..

이론과 실천 2020.09.17

특정 상표명이 보통명사로 잘못 쓰이는 몇몇 사례

방학이 시작되면 내가 맨 먼저 들르는 곳이 대구에 있는 악기사다. 이 동네는 내가 태어났고 지금 어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곳이기에 자주 간다. 악기사에 전시된 기타 하나가 눈길을 끌어 사진을 찍었다. 메이커 이름이 오베이션(Ovation)이라 적혀 있는데, 지금까지 나는 ‘오베이션’이 이렇게 생긴 기타를 통칭하는 명명으로 알고 있었는데, 특정 기타 상표명인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아마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특정 상표명이 보통명사로 잘못 쓰이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 바바리 ‘바바리 맨’이라 할 때 ‘바바리’는 명품 의류 메이커 ‘버버리Burberry’에서 왔다. 버버리는 영국 메이커인데, 영국 날씨는 비가 자주 내려서 사람들이 우산 대신 입는 레인코트를 버버리 회사에서 만..

이론과 실천 2020.09.17

결혼에 집착하는 한 여성의 회복적 삶을 그린 영화 [뮤리엘의 웨딩]

뮤리엘의 웨딩 Muriel’s Wedding(1994) 이 영화는 감독(P.J. 호건)과 출연진이 모두 호주 출신이고 촬영 장소도 대부분 호주가 무대인 호주 영화다. 이렇다 할 스타 배우 하나 등장하지 않는 청초한 작품이지만,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볼거리와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 그리고 인간 내면에 대한 나름의 진지한 성찰적 요소까지 품고 있는 수작이다. 올드팝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진대, 영화 곳곳에 아바(ABBA) 음악이 배치되어 아련한 청소년기의 추억에 빠져들게 된다. 아바 음악을 빼놓고 이 영화를 생각할 수 없다. 음악적 요소 외에 플롯 구성 면에서도 아바 음악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아바 음악을 중심으로 이 영화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