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과학적 개념 vs 자생적 개념

리틀윙 2020. 9. 17. 16:18

우리의 사고가 발달하는 것은 개념을 통해서이다. 개념은 책이나 여러 가지 지적 경로를 통해 획득되지만, 개인이 나름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형성해가는 경우도 많다. 비고츠키는 이렇게 형성된 개념을 ‘자생적 개념’라 일컬었다. (원어로는 ‘spontaneous concept’인데 흔히 ‘일상적 개념’으로 옮기곤 한다.)

자생적 개념은 스스로 길어 올린 지식체계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이 개념을 스스로 형성하기까지 나름 정교한 논리와 사고를 작동시켰기에 그 과정에서 내면에 일정한 정신의 근육이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생적 개념은 어떤 객관적인 팩트에 근거하지 않고 주관적 사고에 의거하여 자의적으로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 오류를 내포할 위험이 있다.

 

자생적 개념의 이러한 한계에 대비되는 개념이 과학적 개념(scientific concept)이다. 비고츠키는 아동이 학교교육을 통해 과학적 개념을 습득할 수 있다면서 제도권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자생적 개념도 일정한 의의가 있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피력한 것이다. 비고츠키의 맥락에서 자생적 개념은 과학적 개념의 대립물로서 극복되어야 할 부정적인 의미로만 언급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동이 획득하는 자생적 개념은 나름의 치열한 논리 구성의 소산이 아니라 ‘카더라 통신’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성장기의 아동이 습득하는 자생적 개념 가운데 가장 오류가 많은 분야가 ‘성 관련 지식’이 아닐까 싶다. 성격상 성에 관한 개념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유입되기 때문이다.

 

자생적 개념 가운데 나름 정교한 논리 과정의 산물로 형성된 경우에도 오류를 품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어제 “특정 상표명이 보통명사로 잘못 쓰이는 사례”에 관한 글을 올린 뒤, 지식의 확장을 위해 벗들과 이에 해당하는 사례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포크레인’에 관한 나의 자생적 개념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크레인’을 나는 ‘포크fork’와 ‘크레인crane’의 합성어로 생각했다. 영어로 크레인은 ‘학鶴’이다. 포크레인은 학처럼 긴 목을 가지고 있고 그 끝이 포크처럼 생겨서 ‘포크레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걸로 생각했다. 그리고...... 파닉스 시간에 crane이라는 단어 뜻풀이할 때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수십 년 동안!

 

그런데 어제 고마운 벗을 통해 포크레인은 이 장비의 제조 회사 ‘포클레잉 Poclain’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쉬운 것은, 이 단어를 영어식으로 읽더라도 ‘포클레인’으로 명명해야 하는데 ‘포크레인’이라 하니 ‘fork crane’으로 유추한 것이다.(영어 발음에서 같은 자음자가 연속으로 오면 하나는 사라진다. 그래서 포크크레인이 아니라 포크레인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의 그릇된 자생적 지식으로 인해 그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엉터리 지식을 배워갔는가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아이들이 오직 학교교육을 통해 과학적 개념을 익힐 수 있다는 비고츠키의 말과 무관하게, 선생을 잘못 만나면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도 엉터리가 되는 것이다.

 

남을 가르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새삼 깨닫는다. 그간에 나의 모난 성정으로 상처를 입은 아이들은 차치하고, 어설픈 자생적 지식으로 아이들에게 엉뚱한 개념을 주입시킨 사례가 얼마나 많을지 회한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러나 학교교육에는 리콜이라는 게 없다 ㅠ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