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2 16

교사와 관리자 사이에서

지금까지 교직생활을 해오면서 교장교감선생님들과는 불편한 관계를 맺은 적이 많아도 교사들에게는 그런 적이 잘 없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후배교사들과는 반목하거나 불화한 경우가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을 혐오했고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안 되리라 다짐했다.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강한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일정한 자부심을 품어 왔다. 내가 후배교사들과 잘 지내온 것은 나의 이러한 기질 혹은 성품과 관계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이런 생각이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이유를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교사들과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내가 관리자가 아닌 교사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이 사실을 지금에야 깨닫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든 탓이리라. 산마루..

교실살이-2 2021.02.09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 월요일에 내 강의를 들었던 분인데 강의가 너무 좋아서 자신의 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줄 수 있냐는 문의를 하셨다. ‘혁신학교 교육철학’이란 주제로 시도한 첫 강의였기 때문에 내 강의의 완성도에 대해 자신이 없었는데 이런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광주라는 지역의 특수성이나 강의 주제도 애착이 가서 나름 공을 들여 준비한 강의였기에 뿌듯한 것도 있지만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이분이 교사가 아닌 관리자(교감)인 점이다. 연수 참가자 가운데 교장 교감 선생님들도 계신다는 사실을 강의 시작하기 직전에 알았다. 준비한 강의 내용 가운데 “학교 혁신을 위해서는 관리자가 먼저 혁신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많이 들어 있어서 교장 교감 선생님들의 입장에서 다소 듣기 불편할..

교실살이-2 2021.02.09

교육적인 것이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교육적이다

연말정산 때문에 학교에 갔다. 마침 교장선생님이 계셨다(방학 중에 교사는 학교에 안 나와도 되지만 교장과 교감은 한 사람씩 교대로 근무한다). 연말정산 끝내고 교장실에 들렀다. 집으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오랜 만에 학교에서 만났는데 그냥 사라지는 것이 예의(상하 관계의 예의가 아니라 비슷한 연배의 동료로서의 예의)에도 어긋날 뿐더러, 그간에 어떻게 지냈는지 학교에 별 일은 없는지 궁금한 마음에서 찾았다. 돌이켜보니, 지금껏 교직생활에서 이렇듯 따뜻한 마음으로 교장실 문을 노크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학교에서는 내가 발령 받아 갈 때 교장실에서 교장과 교감이 머리 맞대고 1시간 동안 대책회의를 열었다 한다. 그 말을 내게 해준 이는 다름 아닌 교감(교장 교감 모두 나의 선배다)이었다...

교실살이-2 2021.01.27

학교에서 민주주의교육이 실패하는 까닭에 관한 일문일답

◎ 학교는 뭐 하는 곳인가? -- 학교는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다. ◎ 학교는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학교교육의 궁극목표는 무엇인가? -- 민주주의다. 기독교는 사랑, 불교는 자비, 학교교육은 민주주의를 지고의 가치로 삼는다. ◎ 민주주의가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지만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잘 배우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교육이 입시 위주로 흘러가서일까? -- 꼭 그렇지는 않다. 학교교육 문제의 기저에 질곡의 입시제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테면 초등학교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은 입시제도와 무관하다. 구조적인 모순의 해결은 중요한 문제지만, 여기서는 학교교육에서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 현 시점에서 우리 교사들이..

교실살이-2 2021.01.27

자유, 자기의 이유로 살아가기

방학하기 며칠 전에 교직원 회의가 소집되었다. 내년도 예산안을 검토하기 위함이다. 며칠 전에도 두 번의 미팅(회의)이 있었기에 회의에 대한 교사들의 회의감이 증폭되었다. 이 두 번의 미팅은 행정실장 때문이었다. 한 번은 2년 동안 이 학교에서 함께한 기존 실장과 이별의 정을 나누기 위한 자리였고 다른 한 번은 새로 부임한 실장과 상견례를 하기 위한 자리였다. 행정실장과의 이별과 환영을 위한 두 번의 회의 소집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고 또 불과 10여 분만에 끝났기 때문에 별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예산안 문제로 1시간 넘게 회의를 여는 것은 교사들이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전체 교사들이 한 명씩 앞에 나와 자신이 맡은 업무와 관련된 예산 편성 내역을 브리핑하고 동료 교사들의 질문이나 의견을 주..

교실살이-2 2021.01.27

실천과 깨달음

교직생애 처음으로 ‘시 쓰기’를 시도해봤다. 해마다 글쓰기 지도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시 쓰기를 공 들여 지도하기는 처음이다. 그 이유는, 글짓기(산문)보다 시 쓰기(운문)가 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했더니 좋은 작품이 마구 쏟아져 나와 깜짝 놀랐다. 그것도 6학년이 아닌 3학년이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평소 산문은 단 한 줄도 못 써 글짓기 과제는 아예 포기하는 ‘쓰기 포비아’ 아이들도 근사한 창작 시를 완성해낸 점이다. 애초에 이 과업은 미술수업과 국어수업을 겸하여 ‘시화 그리기’로 목표를 잡았다. 전날 숙제로 자기 시를 지을 사람은 시를 짓고 시 짓기가 부담 되는 사람은 인터넷에서 좋은 시를 검색하여 공책에 적어 온 뒤 미술 시간에 옮겨 쓰고 그림을 완..

교실살이-2 2021.01.27

분노한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응대하기

10~20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교사가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있다면 교장 교감 정도인데, 이 마저도 소신 있는 교사는 위축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교장 교감보다 더 두려운 사람이 있으니 학부모입니다. 예전에는 교사가 학부모에게 갑질을 했지만 지금은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학부모가 학교교육의 한 주체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분명 발전의 한 모습이지만, 간혹 선량한 교사들이 학부모들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고 내상을 입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며, 나 역시도 그런 험한 일을 겪을까봐 늘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게 모든 교사들의 운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피해 교사에게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불상사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오직 교사의 몫입니다. 격한 분..

교실살이-2 2021.01.27

학생이 행복해야 교사도 행복하다!

내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김** 교장님께서 어제 나의 글에 대한 귀한 의견을 댓글로 남기셨다. 교장 샘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A) “교사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이 제로섬게임으로 작동한다”는 나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B) (그 근거로) 학교 경영자로서 두 집단이 동시에 행복할 수 있음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교장 샘의 유연한 반론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나의 사고를 더욱 생산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토론 당사자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로 핵심 낱말에 대한 용법(terminology)이 서로 달라서 그런 경우가 있는데, 지금 나의 글에 대한 김 교장님의 반론이 그러하다. A)에서 내가 말한 ‘행복’과 B)에서 교장 샘이 말씀하신 ‘행복’은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나는 이 두 ..

교실살이-2 2021.01.27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

교사들 사이에 흔히 회자되는 경구로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얼핏, 지당한 말처럼 들린다. 학교에서 행정실 직원이라면 몰라도 교사 가운데 이 말에 반감을 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 자체로는 진위를 검증할 수 없다.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인 경구는 부조리한 맥락에서 악용될 위험이 있다. ‘교사의 행복’이라는 표현은 너무 모호하다. 교사의 어떤 행복이 학생의 행복과 연관을 맺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논해야 한다. 내가 이 경구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도 현실 속에서 교사의 행복이 학생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학교의 시간 운영이다. 중등은 몰라도 초등학교에서는 시정표를 조밀하게 짜서 수업 끝내고 학생들을 ..

교실살이-2 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