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2

과잉 금기

리틀윙 2020. 4. 4. 01:20

어제 둘째 아이 졸업식이었다. 식장에 늦게 도착한지라 인파를 헤집고 들어가기가 어려워서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보다가 깜짝 놀란 것이 있다.


계단 마다 모두 저렇게 금연 문구가 빽빽이 붙여져 있다.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선 볼 수 없는 그림이어서 적응이 안 되었다. 초등학생들은 담배와 무관하니 저런 문구를 붙일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도 생활습관과 관련하여 지도할 거리는 많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하라거나 ~하지 말라는 문구를 계단에 붙여놓지는 않는다




내가 이 학교 학생이라면 저런 금기 일변도의 부정적인 문구들로 도배되어 있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남녀공학이니 흡연 학생이 그리 많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흡연하는 학생들에게도 저런 문구가 하등의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차라리 저런 듣기 불편한 말보다는 우리 청춘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나 감동적인 시구 따위를 붙여 주는 것이 교육적으로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내가 우리 딸 만한 나이 때 성문종합영어에 나오는 멋있는 한 문장에 가슴 설레고 그 문구의 의미를 한참동안 곱씹으며 사색에 잠긴 적이 있었다. 반면, 학교나 집에서 이래라 저래라 훈시 들을 때는 반항심을 품곤 했다. 그게 청춘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한 문장에는 가슴이 도약하는 반면, 부정적이고 훈육적인 한마디의 설교에는 괜한 반발심을 품는 것이 이 시기 학생들의 발달심리이다.


요컨대, 저런 문구들은 학생 성장에 아무 도움이 안 될뿐더러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하는 문자의 공해이다. 차라리 없애고 아무 것도 안 붙이는 것이 정서적 안정에 이로울 것이다.


3년 동안 우리 아이를 길러주신 선생님들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숲 속에 있으면 숲이 안 보이는 것처럼 고등학교에 계시는 분들은 저런 환경이 익숙해서 문제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중등 교사인 분들이 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고서 느끼는 문제점을 토로하실 때 나는 대체로 그 말씀이 맞다고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곤 한다.


20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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