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38

학교 참 많이 변했다!

오늘 개학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아이들 책걸상을 닦다가 잠시 상념에 젖는다. 학교 참 많이 변했다! 최근 5년 이내 교사가 된 분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실 것이다. 예전에는 방학 끝자락에 반장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선생님, 교실 청소하러 언제 들어갈까요?” 아이가 반장이면 엄마도 반장이었다. 무슨 패키지 상품처럼 한 세트로 인식되었다. 반장 어머니를 중심으로 학급 어머니회가 조직되어 정기적으로 교실 청소를 했다. 그 시절에 학모는 식모였던 것이다. '전설의 고향'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10년도 채 못 된 이야기다. 2015년인가 김영란법이 제정된 이후로 공직사회, 특히 학교가 엄청나게 변했다. 바람직한 변화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학교가 학모님을 식모처럼 부려 먹을 때 젊은 교사들은 대..

교실살이-1 2021.09.09

뜻밖의 편지

‘스승의 날’을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어제 재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로부터 편지를 전달받으면서 알았다. 2019년에 이 학교에 부임해와서 3년째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데 첫해의 아이들이 무척 힘들었다.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말썽꾸러기들이었고 여자 아이들 중에도 성격이 거칠고 공격적인 아이들이 많아서 단 하루도 사건 사고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때 아이 가운데 두 여학생이 편지를 전하러 우리 교실에 들렀다. 실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아이다. 하나는 그 혼란스러운 집단 내에서 가장 반듯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이고 다른 하나는 내 교직생애에서 가장 “무질서한” 아이다. 앞의 아이가 편지를 주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울 바 없지만, 뒤의 아이는 정말 뜻밖이었다. 기초학습 능력이 바닥에 있어 공부 시간에 매..

교실살이-1 2021.06.17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1988년에 교단에 선 뒤로 지금까지 총 9개의 학교에서 근무해오고 있는데, 두 번째 학교에서 부터 지금까지 줄곧 밴드부를 결성하여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왔다. 그때가 1994년이었다. 그 시절에는 학교 예산이 빈곤해서 밴드 악기를 사달라고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드럼, 일렉기타 따위의 악기는 내가 다른 학교로 전근 가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요청할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그룹사운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악기와 장비를 내 사비로 구입한 뒤, 다른 학교로 이동하면 들고 가서 가르치곤 했다. 또한, 그 시절 교사들은 학생지도와 관련하여 월급 외에 따로 받는 것이 전혀 없었다. 중등과 달리 초등에는 ‘보충수업’ 따위의 개념이 없으니 이를테면 방과후에 글자 모르는 아이를 지도할 때 아무런 물질적..

교실살이-1 2021.01.27

교육적 만남

6학년 밴드부 아이가 악기실에 들어오면서 나랑 마주쳤을 때 “존경하는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리 무거운 톤은 아니고 애교 섞인 인사말인데 ‘존경’이라는 수사 속에는 상대에 대한 나름의 각별한 마음이 느껴졌다. 밴드부 아이들은 매주 한두 번 합주할 때 음악적으로만 만나다 보니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기회가 잘 없다. 더구나 이 아이는 여학생인데 요즘 학교에서 남교사가 여학생과 소통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인 한편 아이의 성격도 그리 소탈해 보이지 않아서 지금껏 서로 편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전까지 아이의 인사말은 그냥 ‘안녕하세요’였다. 아이는 어떤 특별한 시점 이후부터 내게 존경심을 품게 된 것인데 그 계기로 작용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아이에게..

교실살이-1 2021.01.27

실존적 자극

아침에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희동이가 교실문을 살포시 열고 들어와서 발열체크 요청을 한다. 엇! “이 시간에 네가 웬일이니?” 희동이는 지각을 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어제 수학 학습지 숙제를 학교에 두고 와서 아침에 일찍 와서 하려고요! 너무 좋다. 올해 아이들은 대부분 모든 면에서 양호한 편이지만 코로나 체제 하에서 학교나 가정에 뭘 두고 그냥 오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등교일과 가정학습일이 수시로 바뀌니 아이들이 잘 챙기질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습지를 학교에서 안 가져가는 바람에 숙제를 못했어요”라는 아이들이 많이 생겨난다. 몇몇은 상습적으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바 수시로 일장훈시를 하곤 한다. 어릴 때 생활습관의 중요성 운운하면서 말이다. 희동이의 이 반..

교실살이-1 2021.01.27

사랑스러운 아이들

올해 우리 반 아이들, 너무 사랑스럽다. 2017년부터 올해까지 연속으로 4년째 3학년 담임을 해오고 있는데 첫 해와 셋째 해에는 힘든 아이들이었고 둘째 해와 올해는 순한 아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힘든 아이들과 순한 아이들 둘 다 3학년 특유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으니, 지식에 대한 욕구가 왕성한 점이다. 수업 시간에 학습 주제와 관련한 흥미 있는 이야기를 해주면 눈을 반짝이며 이따금씩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지른다. 올해 아이들은 특히 이러한 지적 호기심과 학습 열정이 강해서 나도 수업하는 신명을 느낀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2시간 연강으로 70분씩 수업을 하는데도 학습에 대한 몰입도가 높은 것이 뜻밖이고 그래서 더욱 기특하고 사랑스러울 따름이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우리 반 아이들의 입에서 매..

교실살이-1 2020.08.02

등교 수업

3월1일이 학년도 시작인데 거의 100일 만에 등교개학을 했다. 이 시점에서 교사는 두 마음이 교차하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아이들이 반가운 한편, 숨 가쁜 나날이 펼쳐지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건강검진 때 팔을 내밀고 피 뽑기 전에는 두렵지만 막상 주사바늘이 들어오고 나면 아무렇지 않듯이 교육일상은 시작되고 나면 원활히 돌아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수업이다. 책상을 최대한 띄어놓고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니 여간 힘들지 않다. 더구나 여름의 문턱에 접어들어 날씨는 더운데 10분만 떠들면 숨도 차고 얼굴에 식은땀이 흐른다. 마스크 벗고 땀을 닦으려 하면 “매뉴얼”이 떠올라 망설이고 아이들 눈치를 보게 된다. 코로나 상황에서 수업이 힘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둠활동을 할 수 없어 교사 혼..

교실살이-1 2020.08.02

오래 만나고 싶은 아이들

어제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재작년 도량초 학부모님인데 사연인즉, 다가오는 아이의 생일 때 내 책의 사인을 받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는 내 첫 저서 [교사가 교사에게]는 내가 담임할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뜻깊게(?) 읽었고, 두 번째 저서 [학교를 말한다]는 나와 헤어질 무렵 구미 서점에서 구입하였다. 이 책은 초3 아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어서 부모님께서 읽으셨고 아이는 저자이자 (자신이 좋아하는)담임선생님의 사인을 받는 것을 소망한다는 말씀이었다. 아이와 부모님의 마음이 가상하여 흔쾌히 가겠다고 답했다. 마침 스승의 날이다.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교사들을 배려하여 “은사님 찾아뵙기”라는 명목으로 조퇴 달고 일찍 나가라고 하시길래, 나는 은사 대신 제자를 만나기 위해 교문을 나섰다...

교실살이-1 2020.08.02

온라인 개학

긴장 속에 치른 온라인 개학, 한마디로 대성공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우리 학교는 화상 라이브가 아닌 수업 콘텐츠 업로드와 실시간 과제 점검 방식의 수업이다. 다른 학년과 달리 우리는 네이버밴드를 이용했는데, 위두랑보다 이게 훨씬 좋다. 그리고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콘텐츠 중심 수업이 화상수업 보다 학생성장에 훨씬 이롭다. 온라인 수업의 이모저모에 대해서는 1주일 길을 가보고 주말에 심도 있게 논하겠다. 12월말에 겨울방학에 들어가 2월에 1주일 학교 나오고 어제 개학했으니 거의 4개월 만이었다. 온라인이어서 얼굴도 목소리도 접할 수 없었지만 네이버를 매개로 주고받은 댓글을 통해서도 아이들의 반응이 생생히 전해져왔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어제 아이들 집단의 풍경은 흡사, 공장형 축사에 ..

교실살이-1 2020.08.02

도덕수업 시간에

도덕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행복에 관해 물었다. “여러분들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나요?” 아이들이 하나둘 답한다. - 잠 잘 때요. - 아빠 친구한테 5만원 받았을 때 행복했어요. - 가족이랑 대화할 때요. 마지막 한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다. - 다른 사람과 무엇을 나눌 때요! 지금까지 교단에서 아이들로부터 들은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 하겠다. 아이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 흡사 한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평소의 언행으로 미루어 약간의 가식도 담겨 있지 않은 순수 그 자체다. 새벽의 옹달샘 물처럼 맑은 이 아이의 영혼을 맞이하면서 최근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 조선일보 손녀의 말을 떠올린다. “돈 벌거면 똑바로 벌어. 아저씨처럼 바보같이 사는 사람 없거든!” 같은 초등학교 3학년인데 극단적으..

교실살이-1 2019.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