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도덕수업 시간에

리틀윙 2019. 3. 27. 16:41

 

도덕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행복에 관해 물었다.

 

여러분들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나요?”

 

아이들이 하나둘 답한다.

- 잠 잘 때요.

- 아빠 친구한테 5만원 받았을 때 행복했어요.

- 가족이랑 대화할 때요.

 

마지막 한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다.

 

- 다른 사람과 무엇을 나눌 때요!

 

지금까지 교단에서 아이들로부터 들은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 하겠다. 아이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 흡사 한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평소의 언행으로 미루어 약간의 가식도 담겨 있지 않은 순수 그 자체다.

 

새벽의 옹달샘 물처럼 맑은 이 아이의 영혼을 맞이하면서 최근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 조선일보 손녀의 말을 떠올린다.

 

돈 벌거면 똑바로 벌어. 아저씨처럼 바보같이 사는 사람 없거든!”

 

같은 초등학교 3학년인데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이 두 영혼은 천사와 그 대립물인 무엇을 연상케 한다.

 

아이의 아버지인 TV조선 사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자식 교육 잘못 시킨 죄로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대한항공 조양호 씨와 마찬가지로, 재벌 갑질이 사회적으로 문제 될 때마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입에서 습관처럼 내뱉는 반성문이다.

 

돈 벌거면 똑바로 벌어라는 말은 아홉 살 꼬맹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학습의 결과일 뿐이다. 부모의 말을 아이가 학습한 것이다. 부모가 돼서 자식 보는 앞에서 사회적 약자를 향해 무자비한 갑질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자식 교육운운하니 심한 멀미가 느껴진다.

 

아이의 인격 형성에서 부모보다 더 중요한 교육자는 없다. 학교교육과 달리 가정교육은 비형식적으로 은연중에 이루어지니 부모의 삶 자체가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아이에게 학습되는 법이다.

 

이웃과 무엇을 나눌 때 행복을 느낀다는 우리 반 아이의 예쁜 심성 또한 부모님의 삶이 오롯이 학습된 결과일 것이다. 교통봉사당번 배정할 때 자원해서 하루라도 더 맡으시겠다며 나의 짐을 덜어주신 부모님이다. 세세한 가정 형편은 모르지만, 우리 학부모님들의 절대다수는 스무 평 남짓한 서민 아파트에 사신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면서 행복을 느껴가는 분들인 것이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대한민국 초일류 재벌가에서 태어나 영혼이 망가진 아이에게 세상 사람들은 저주에 가까운 분노를 품는다. 아이는 아마 조현아 조현민이 그랬듯이 세상을 호령하며 여왕처럼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지배하되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사디스트적인 권력자의 삶이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소박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선한 영향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영혼을 지닌 우리 반 여자 아이가 진정한 이 세상의 여왕queen of the world이다.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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