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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적 멸공 신드롬

한국 현대사에서 아까운 인물이 독재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예가 많다. 알다시피 그 최초의 인물은 백범 김구 선생이다. 김구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이승만에 의해 희생당한 또 다른 인물로 죽산 조봉암이 있다. 이 두 사람은 이승만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이유로 죽임을 당한 점에서는 같지만, 죽는 방식 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이승만은 백범에게는 자객을 보내 은밀하게 죽였지만, 죽산에게는 어떤 올가미를 씌워 합법적으로 죽였다. ‘승공’이라는 이름의 올가미였다. 6.25 이후 이승만은 강력한 반공주의를 국시로 내세우며 북진통일 정책을 펼쳤다. 이에 반해 조봉암은 평화통일을 정치적 입장으로 취했다. 1956년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이 30퍼센트의 득표를 하며 뜻밖의 선전을 펼치자 이승만은 당황했다. 그 뒤 이..

장승초

전북 장승초에 다녀왔다. 6학급의 소규모학교인 것은 알았는데 방금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교 현황을 보니 전교생 수가 89명이다. 보통 시골에서 6학급 규모의 학교는 보기 드물다. 대부분 4~5학급이고 전교생 수도 30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학교에서 한 반에 학생 수가 20명씩이나 되면 교사가 엄청 힘들다. 도시 학교의 경우보다 학급당 학생 수는 적지만 교사 업무가 엄청 많기 때문이다. 즉, 교사 입장에서는 그나마 학생 수가 적은 것이 시골 학교에 근무하는 낙이라 할 수 있는데 장승초는 이런 메리트도 없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이 학교에 근무하기 위해 순번을 기다리는 교사가 많다는 것이다. 이 뜻밖의 현상 속에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무릇 교육은 결국 교사의 손끝에서 이루어..

책 쓰는 선생님

경북교육청에 다녀왔다. ‘책 쓰는 선생님’ 성과 나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1년 간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우리 교육청에 대한 소회를 말하고자 한다. ‘책 쓰는 선생님’은 경북교육청에서 2021학년도에 추진한 창의적이고 실속 있는 성과를 거둔 모범적인 사업이라 평가하고 싶다. 책 집필을 희망한 교사 가운데 23명을 선발하여 교육청에서 200~300만원 지원을 해줬다. 참가자 가운데 나처럼 예전에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처음 책을 내시는 분들이다. 누구든 마음만 있을 뿐 선뜻 책을 낼 용기를 품기가 쉽지 않다. 그런 분들에게 경북 교육청이 추진한 이 사업은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300만원이라는 돈도 돈이지만 20~30팀(개인 저자도 있고 공동 저자도 있다) 규..

산타할아버지

10년 전쯤 4학년 담임할 때,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는 것을 알고서 깜짝 놀랐다. 그 뒤로 3학년 아이들에게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묻는데, 매번 긍정하는 입장과 부정하는 입장이 반반으로 나뉜다. 올해는 국어 수업에서 주장하는 글 단원을 배울 때 이 문제를 다뤄 의견을 물어봤다. 주장을 내세울 때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하면서,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각각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을 말해보자 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다. #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 학생-1) 산타가 있기 때문에 선물을 받습니다. 산타 마을도 있는데 산타가 없겠어요? 산타는 굴뚝으로만 들어온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못 들어온다고 생각..

교원평가 3

교원평가에서 한 학생으로부터 욕설 봉변을 당한 그 여선생님은 미술 학원을 운영하다가 학생 교육에 각별한 열정을 품고 늦깎이로 학교 교사가 된 분이시라 한다. 그런 만큼 평소 수업 준비도 많이 하시고 학생들에게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시는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만족도 조사에서 많은 학생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한 학생들이 남긴 풍성한 호평은 단 한 명의 악동이 무심히 던진 한 마디의 욕설을 상쇄하지 못한다. 교사는 AI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지닌 인간에게 어떤 활동에 대한 보람과 희열은 손익계산서로 환원되지 않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렇듯 교원평가는 교육적으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많기 때문에 작년에 실시하지 않길래 우리 교사들은 교육부가 이 제..

교육을 말한다 2022.01.23

교원평가 2

초중고 12년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노라면 사실 존경스러운 스승이 잘 없다. 그리고 교사가 되어 현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의 학교와 교사 모습도 크게 내 학창 시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력과 억압 그리고 촌지로 얼룩진 교단의 풍속도가 너무 싫었고 그들과 동화되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이 전교조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참교육을 신봉하며 정말이지 치열하게 실천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학부모 편에 섰다. 그 덕분에 동료 교사들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정의는 약자 편에 있다고 믿는다. 그 시절엔 학부모가 약자였다. 그러나 지금 학교는 완전히 딴 세상이 됐다. 교사-학부모의 역학관계가 전도되었다. 학부모에게 교사는 더 이상 갑이 아닌 을의 처지에 있다. 학생에..

교육을 말한다 2022.01.23

교원평가 1

해마다 이맘때 교사들을 우울하게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교원평가다. 정확한 명칭은 ‘교원능력개발평가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인데, 이를 통해 교원의 능력이 개발되는 것은 티끌만큼도 없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교원평가를 도입할 때의 의도는 부적격 교사를 교단에서 축출하거나 교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런데 지금 10여 년이 지나고 있지만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결실을 거둔 것은 전혀 없이 그저 선량한 절대다수의 교사들 힘 빼는 결과만 내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의 만족도를 평가하는데, 대다수의 평가 참가자들은 웬만하면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그래서 혹 앙심을 품은 극소수가 ‘별점 테러’를 해도 평균 점수는 높게 나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학생-학부모가 남기는 서술형 평가 글귀다..

교육을 말한다 2022.01.23

바보같은 존재조건이 극악무도한 청소년의 비행의식을 부추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대표하는 한 문장인데,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갖는 분들 가운데도 이 명제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경우를 자주 봤다. 유물론의 진수가 담긴 이 명제는 사실 상식 그 자체로서 철학적 입장과 무관하게 모든 존재 방식에 적용되는 철칙이다. 이를테면, 자동차보험회사에서 피보험자의 연령이나 결혼 여부에 따라 보험수가를 달리 매기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피 끓은 청년과 원숙한 중년, 가족이 딸린 사람과 자유로운 독신은 존재 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조심 운전’의 의식이 다른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더욱 실감나는 예로 요즘 이 나라 중학생들의 극악무도한 비행 행각을 생각해보자. 30여 년 초등교사로 지내고 있는 내 경험으로 초등 아이들은 내 초임 시절인 80년대 말보..

교사가 학부모에게

에 이어 라는 책을 냈습니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지었습니다. 학부모님 외에 선생님들과 일반 시민들께서도 흥미있게 읽으실 겁니다. 페친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주위에 많이 홍보해주시고요, 프롤로그 글을 붙여 봅니다. # 프롤로그 -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희망의 교육공동체를 소망하며 1988년 3월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뒤 어느덧 34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30년이 훌쩍 지났으니, 제 초임 때와 지금의 학교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고사성어가 실감 날 정도로 많이 변했습니다. 그 시절의 학교는 몹시 궁핍해서 한겨울에도 춥게 지냈지만, 지금의 학교는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통계를 살펴보니, 1988년에 3조..

멀리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나는 ‘잔머리’가 발달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언제 어디서든 늘 잔머리를 굴리며 골똘히 생각하는 습성이 있었다. 골프 연습을 하면서도 생각을 많이 한다. 사실 무슨 운동이든 몸과 함께 머리를 쓰지 않으면 발전은 없다. 특히 골프는 머리 쓰기가 많이 요구되는 운동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공을 멀리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머리를 많이 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공을 멀리 보내는 것보다 똑바로 보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골프 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이 자명한 이치를 우리 일상과 연결지을 때 꽤 의미심장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서 이 글을 쓰게 된다. 이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 골프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그림으로 설명을 곁들일 필요를 느낀다. 구글에서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