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부모에게

교사가 학부모에게

리틀윙 2022. 1. 23. 18:23
 
<교사가 교사에게>에 이어 <교사가 학부모에게>라는 책을 냈습니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지었습니다. 학부모님 외에 선생님들과 일반 시민들께서도 흥미있게 읽으실 겁니다.
페친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주위에 많이 홍보해주시고요, 프롤로그 글을 붙여 봅니다.
 
# 프롤로그 -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희망의 교육공동체를 소망하며
 
1988년 3월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뒤 어느덧 34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30년이 훌쩍 지났으니, 제 초임 때와 지금의 학교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고사성어가 실감 날 정도로 많이 변했습니다. 그 시절의 학교는 몹시 궁핍해서 한겨울에도 춥게 지냈지만, 지금의 학교는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통계를 살펴보니, 1988년에 3조6천억이었던 교육예산이 2020년에는 77조4천억으로 무려 21.5배나 증가했습니다. 교육예산의 폭발적인 증가는 그대로 교육환경의 질 제고로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학교의 물리적 환경, 교육 시스템, 교사의 역량 면에서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하겠습니다.
 
학교 교육환경은 놀랍도록 발전하고 변화했지만, 정작 교육이 이루어지는 근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근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이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점입니다. 교실 수업에서 학생의 학업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뭔지를 알아보았더니, 물리적 환경보다 인적 환경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첨단 교육공학 장비보다 교사의 설명이, 스마트기기보다 또래끼리의 토론과 대화가 학생의 성장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이치의 이론적 배경으로 비고츠키의 교육 이론을 중심으로 소개할 겁니다.
 
아동이 맺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입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교육은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를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지적·정서적 성장의 지평이 달라집니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으며, 학교에서 담임교사는 해마다 바뀌지만 부모는 아이의 ‘평생 담임’인 점을 생각할 때,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교육적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할 것입니다.
 
“교육의 질은 교육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교사의 역량 제고를 위해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하고 또 교단에 선 뒤에도 교사 연수 따위를 통해 부단한 연찬硏鑽 과정을 밟게 합니다. 그런데 아이에게 평생토록 영향을 미치는 가정의 교육자에겐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습니다. 부모는 더 나은 가정교육자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연찬을 해가야 합니다.
 
“부모가 돼서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지, 교육 이론 따위를 섭렵하는 게 대수인가?” 하는 의문을 품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열성의 문제이기 전에 지성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 아이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교육학에 관한 일정한 소양이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이런 취지에서 이 책 1부에서는 ‘학부모 교육학’이란 이름으로 딱딱한 교육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도록 엮어 봤습니다.
 
모든 경우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진리는 없는지라, 머릿속에 정교한 이론으로 무장해 있어도 일상에서 부딪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할 선명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이의 삶에 부모가 개입하는 것이 옳은지 또 어느 선까지 개입할지 하는 문제들은 부모 된 사람이 평생 떠안을 고민거리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정답이 있을 수 없으며 그때그때 형편을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할 일입니다. 이것은 이론 외에 관점(인식론)이 요구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은 주로 철학과 신념의 문제”라 믿습니다. 2부에서는 30여 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제 나름으로 정립한 소박한 교육철학을 풀어봤습니다.
 
1~2부가 이론적인 부분이라면, 3부부터는 교육의 실제에 관한 담론들로 구성했습니다. 흔히 이론과 실제는 별개의 문제라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론과 실제는 나란히 나아갑니다. 3부는 이 책의 핵심 지점으로, 앞에서 다룬 이론과 철학을 바탕으로 학부모의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고민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에서 놀이와 공부 그리고 삶은 따로 가지 않습니다. 어릴 때 한껏 놀아본 아이가 공부도 잘하며 이 험한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내는 힘을 지닙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시험 성적 올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억지로 하기보다는 즐겁게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공부 잘하기’보다 ‘잘 공부하기’를 지향하는 아이는 학업성적과 함께 자기 삶의 질이 향상되어 종국적으로 공부의 힘으로 삶을 잘 살아내게 됩니다.
 
제 초임 때에 비해 지금의 학교는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물리적 환경 면에서의 변화 외에 ‘교사-학부모의 역학관계’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솔직히, 예전의 학교는 교육의 한 주체인 학부모를 푸대접한 면에서 문제가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학모는 식모 노릇 했습니다. 학급임원 선거에서 반장으로 추대된 아이가 앞에 나와서 한다는 말이, “추천해준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엄마가 바빠서 반장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교직 생애에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에피소드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는 정반대의 아픈 기억을 교사에게 자주 안기는 실정입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초3 교육과정에서 필수성취 요소 가운데 하나인 리코더 지도가 불가능해 교실에서 설명만 하고 집에서 열심히 연습하라고 했더니, 어떤 부모님께서 “지금 서울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과정의 수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쓸데없이 리코더 숙제 내서 아이 스트레스받게 한다.”며 항의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의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학부모의 빗나간 자녀 사랑으로 인한 민원으로 학교가 몸살을 앓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예전의 교사는 학부모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자였지만 지금 교사는 학부모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떠는 초라한 존재로 전락해 있습니다. 교육은 주로 철학과 소신의 문제인 까닭에, 이런 조건 하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을 신명나게 가르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점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학부모님들께서 교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를 위해서 교사를 존중하고 학교에 대한 신뢰를 품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4부의 글들을 썼습니다.
 
우울한 교육 현실을 뒤로 하고 5부에서는 교사와 아이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풋풋한 교실 풍경을 스케치해봤습니다. 창백한 교육원론이 뭐라 하건 간에 현실 속의 교사는 페스탈로치가 아니며 아동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교사는 교사이고 아이는 아이일 뿐입니다. 교사와 아이, 아이와 아이가 인간적으로 부대끼며 웃고 우는 저희 교실 일상으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을 볼 때처럼 글을 읽으시며 옛 추억에 잠시 잠겨 보시기 바랍니다.
 
학교가 많이 변했으되 교육의 장에서 변함없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동심입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2학기 상담주간이어서 학부모님들께 쭉 전화를 드리고 있는데 어제 한 어머니는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환경교육을 너무 잘 시키셔서 무더웠던 이번 여름에 집에서 에어컨을 한 번 밖에 못 틀었다”고, “아이에게 선생님의 말씀이 곧 법”이라 하십니다. 불평이 아니라 고맙다는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아이가 교사의 칭찬 한마디에 하늘을 날 듯이 기뻐하는 마음이나 교사를 통해 변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흐뭇해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꼰대 교사의 별난 지침을 고깝게 받아들이실 수도 있는데 호응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힘을 받으면 다음 날 교육 실천이 힘차게 이루어지고 그 힘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가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무릇 교사와 학부모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서로 협력할 때 최선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신명나게 가르치고 즐겁게 배워가는 희망의 교육공동체를 소망하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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