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부모에게

책 쓰는 선생님

리틀윙 2022. 1. 23. 18:32
경북교육청에 다녀왔다. ‘책 쓰는 선생님’ 성과 나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1년 간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우리 교육청에 대한 소회를 말하고자 한다.
 
‘책 쓰는 선생님’은 경북교육청에서 2021학년도에 추진한 창의적이고 실속 있는 성과를 거둔 모범적인 사업이라 평가하고 싶다. 책 집필을 희망한 교사 가운데 23명을 선발하여 교육청에서 200~300만원 지원을 해줬다. 참가자 가운데 나처럼 예전에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처음 책을 내시는 분들이다. 누구든 마음만 있을 뿐 선뜻 책을 낼 용기를 품기가 쉽지 않다. 그런 분들에게 경북 교육청이 추진한 이 사업은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300만원이라는 돈도 돈이지만 20~30팀(개인 저자도 있고 공동 저자도 있다) 규모로 선발하니, 어떤 집단 분위기에 고무되어 선생님들이 나름의 용기나 도전정신을 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14개가 진보 성향이고 나머지 3개가 보수 성향으로 구분되는데 경북이 그 셋에 속한다. 요즘은 정치판을 봐도 그렇고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선명하지 않다. 무늬는 진보인데 속을 파보니 시커먼 경우가 적지 않고, 보수여서 구태를 답습할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참신한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진보 교육청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책 쓰는 선생님’이란 사업을 추진한 경북 교육청의 경우가 그런 예가 아닐까 싶다.
 
4년 전에 쓴 [학교를 말한다]라는 책에서 경북 교육청을 신랄하게 비판한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나 스스로도 놀랍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변한 주관적 요인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상 자체가 변한 객관적 요인 탓이 크다. 경북뿐만이 아니라 교육 영역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다. 정치판이든 교육영역이든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상을 대변한다. 따라서 이를테면 교육청에서 추진하는 일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교원단체에서 주장하는 아젠더가 반드시 교육의 진보를 보증하리라 믿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한 자세야말로 구시대적 퇴행 그 자체다.
 
경북교육청이 도대체 예전보다 뭐가 나아졌다는 말인가?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지도 모른다. 특히 젊은 교사들이 그럴 수 있다. 예전의 고질적인 관료주의에 찌든 교직사회 문화를 경험한 적이 없는 젊은 교사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이분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교육청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실 것 같다. 문제는, 과거의 교육청은 상식이나 합리성과 거리가 한참 멀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내가 “교육 지원청이 아니라 교육 방해청이다."라고 했을까?
 
우리 교육청이 학교 교육을 방해하지 않고 지원하는 상식을 회복하려 애쓰는 모습이 나는 피부로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이분들이 현장 교사들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 진정성이 엿보인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현장 교사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학교장도 교실을 떠나 있으면 학교교육의 리얼리티가 낯설어진다. 하물며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교육청 관계자들은 지금 학교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가 무엇인지, 일선 교사들이 말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따라서, 교육청이 학교를 잘 돕게 하려면 우리 교사들이 먼저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오늘 열었던 ‘책 쓰는 선생님’ 사업도 일선에 있는 어느 교감 선생님의 제안으로 교육청에서 추진하게 된 것이라 한다.
 
비판과 투쟁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관료들이 권위주의로 교사를 지배하고 학교교육을 뒤흔들려는 곳에서 교사들은 실력 행사를 통해 정의를 쟁취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를 돕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기꺼이 들으려는 교육청을 향해서는 일단 그분들에게 말을 걸고 제안을 하는 노력이 우리 교사들에게 요구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실, 입장을 달리 하는 두 당사자가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펼치며 서로의 간극을 좁혀가는 이 실천은 민주주의의 알파요 오메가다. 이러한 실천의 중요성에 대한 각성이나 이것을 실행에 옮기려는 의지를 품지 않는 교육자는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가 없다. 교사의 삶 속에서 민주주의가 없으면 교육에서 민주주의는 그저 관념으로만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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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23명의 작가들이 한 사람씩 앞에 나와 2~3분 동안 자기 책에 대한 소개를 하는 모습.
내 발표 때 “글쓰기는 고도의 추상 능력이 요구되는 과업이기에 한 권의 책을 낸 사람의 정신세계는 일취월장해진다. 교사의 성장은 그대로 경북 교육 발전으로 연결될 것이기에 ‘책 쓰는 선생님’은 정말 멋진 사업이다."는 발언을 했다. 우리 교육청이 불을 지핀 이 사업이 전국의 많은 교육청으로 번져나가 이 땅의 많은 교사들이 책쓰기를 통해 지성적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사진2 = 장학사님의 아이디어였을까? 한 송이 장미가 감동이다.

 

 

 
사진3 = 행사 끝나고 교육청 별관 카페에서 행사 참가 현장 교원들과 교육청 모 장학관님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교육청 건물의 귀퉁이 위치한 이 공간은 예전에 흡연실이었는데 얼마 전에 이런 목적으로 활용하게끔 카페로 만들었다고 한다.


202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