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부모에게

어른들과는 다른 사고의 패러다임

리틀윙 2021. 6. 17. 16:04

 

 

내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 ‘공주와 달’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어린 공주는 원하는 것은 뭐든 가져야했고 그 철부지를 너무도 끔찍이 여기는 왕은 그의 소원을 다 들어 주고자했습니다. 어느 날 공주는 밤하늘의 달을 왕에게 따달라고 졸랐습니다. 왕이 대신들을 불러 모아 공주를 위해 달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하달하자 신하들은 하나 같이 불가능한 일이라며 펄쩍 뛰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시종장은 달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못 따온다 하고 왕국에서 가장 똑똑한 수학자는 달까지의 거리가 38만 킬로미터나 된다는 전문적인 식견을 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달에 대한 공주의 집착은 더욱 커져만 갔고 급기야 달을 따 줄 때까지 밥을 먹지 않겠다며 단식투쟁에 들어갔습니다. 왕의 근심이 깊어져갈 때 뜻밖으로 광대가 이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광대는 공주에게 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큰지, 무슨 색인지 물은 뒤 공주의 관념을 기초로 모형 달을 제작하여 건네주었습니다. 공주는 뛸 듯이 기뻐하였고 왕의 큰 근심도 사라졌습니다.

 

나라에서 제일 유능하고 똑똑한 신하들이 해결 못한 문제를 하찮은 신분의 광대가 풀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문제 해결을 향한 접근법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신하들은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함을 역설한 반면, 광대는 공주의 주관적 사고와 심리에 맞춰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신하들은 객관적 진리의 절대성을 강조하며 공주의 사고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공주를 자기네 쪽으로 끌어당기려 했습니다. 반면 광대는 공주의 생각과 마음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눈높이를 공주의 사고에 맞춰 낮춤으로써 문제 해결의 답을 찾았던 것입니다.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과 사고의 패러다임이 다릅니다. 우리가 이들과 마주하며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 역발상으로 접근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어느 해에 처음으로 저학년 담임할 때 그런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고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저학년 담임을 하는 교사들은 처음에 적응이 잘 안 됩니다.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데다 왕성한 신체발육에 비해 자기조절 역량이 부족해서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장난과 다툼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 해의 아이들이 특히 이런 경향성이 심했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로 출근하기가 두려울 정도였고 교직생애 처음으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둬야 하나’ 하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의 근심 걱정만큼이나 교실 뒤의 통에 비치된 쓰레기의 양도 점점 늘어납니다. 쓰레기가 가득 차 봉투를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쓰레기 버리는 임무를 누군가에게 부여해야 하는데, ‘이렇게 교사 말을 안 듣는 녀석들에게 심부름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하면 선생 체면이 말이 아닌데’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뜻밖으로 아이들이 서로 하겠다고 아우성을 질러댑니다. 수많은 의외의 지원자들 가운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한 악동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선택받은 녀석이 발걸음도 가볍게 쓰레기봉투를 들고 교실을 나설 때 뒤에서 ‘좋겠다!’라는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순간 ‘어! 이게 뭐지?’ 하며 머릿속이 혼란스럽다가 불현듯 어떤 통찰이 내 머리를 강타해왔습니다. 아, 이게 저학년 아이들이구나! 저학년 아이들이 갈구하는 욕망은 고학년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로 오랜 가뭄 끝에 만난 단비와도 같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물론 이 깨달음으로 인해 그간의 저의 고민이 대번에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악동들과 부대끼는 일은 모든 교사에게 지난한 과제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저학년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교사로서 망가져가던 저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학년 아이와 고학년 아이가 갈구하는 욕망의 차이는 정신과정(지적 수준)의 차이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사고 패러다임이 다르니 욕망 구조도 다르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차이와 관련한 저학년 아이 특유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나서 수업과 학급경영에서 전략과 전술을 새롭게 가져가면서 일정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따로 하겠습니다.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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