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부모에게

글쓰기와 메타인지 역량

리틀윙 2020. 8. 2. 01:00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렸을 적이니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거실에 어항을 꾸며 놓고 싶어서 동네 수족관 집을 찾았다. 어항 세트와 열대어를 고른 뒤에 주인아저씨로부터 어항을 관리하는 요령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으로 수질 관리를 위해 무슨 약품을 며칠 만에 투입하라는 내용은 종이에 적어주셨다. 그런데 집에 와서 종이를 펼쳐 보니 조금 전에 말로 들었던 내용과는 다르게 적혀 있었다.

 

1달 14

 

‘이상하다. 아까는 분명 한 달에 한 개씩 넣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14개라니...... 그리고 10개면 10개지 14개는 또 뭔가?’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이 풀렸다. 아저씨가 내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 속의 숫자는 14가 아닌 1이었다. 그 분은 “한 달에 하나”라는 뜻으로 “1달 1나”라고 적었는데, (ㄴ)과 (ㅏ)가 인접해 있어서 내 눈엔 숫자 ‘4’로 보였던 것이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었는데, 쪽지에 “1달 1나”라는 문구를 적기 전에 잠깐 동안 망설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그 조야한 문구조차 딴에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지적 소산인 것이다. 그 연세의 보통 어르신과 달리 굉장히 친절하고 양심적이기까지 한 분이셔서 좋은 인상을 품었는데, “1달 1나”는 그보다 훨씬 깊은 인상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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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비고츠키의 글을 읽으면서 이 분이 떠올라 글을 쓴다.)

비고츠키는 “글은 단순히 말을 기호로 전환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잘못임”을 역설한다. 글을 써 본 사람이면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말과 달리 글에는 표정, 제스처, 톤이 없기 때문에 고도의 정교한 표현 능력이 요구된다. 화자와 청자가 직접 마주한 상황에서 입말은 생각나는 대로 어설프게 떠들어도 상대방이 알아듣지만 글말은 그러하지 않다.

 

위의 “1달 1나”가 좋은 예다. 이 어쭙잖은 메시지가 그나마 종국적으로 바르게 고쳐졌던 것은 사전에 입말로 전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과정 없이 바로 그 글말(쪽지)만 고객에게 전달된다면 심각한 불편이 발생할 것이다.

 

Implicitly referring to Hegel, Vygotsky concluded that the child has to start from speech “for himself” and transform it into speech “for others”.

아마도 헤겔의 용어를 인용한 듯, 비고츠키는 아동이 “자신을 위한” 말에서 출발하여 “타인을 위한” 말로 전환해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Rene van der Veer & Jaan Valsiner, Understanding Vygotsky, p.331)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는 문맥에서 비고츠키가 언급한 말이다. 헤겔 용어로 ‘자신을 위한’은 ‘대자적’, ‘타인을 위한’은 ‘대타적’으로 옮기기도 한다. 비고츠키가 말한 “대자적 말에서 대타적 말로의 전환”은 글쓰기를 뜻한다. 글을 쓰려면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나의 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헤아려야 한다. “1달 1나”라는 문구는 대타적 성격이 빈곤한 까닭에 언어 사용의 궁극 목적인 의사소통의 기능을 비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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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의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육이 중요한 것은 글쓰기 과업의 이러한 대타성 때문에 고도의 추상능력 외에 메타인지 능력이 길러지는 점이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생각을 인식하기’이다. 나의 생각을 표현한 글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이해될지 판단하는 대타적 인식 능력이 없으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단 한 줄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수 있으면 메타인지 능력이 길러질 것이다.

 

교실에서 또래와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언행에 대한 성찰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을 배려할 수 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판단하는 메타인지 능력이 결핍된 사람이 타인을 배려할 수 없는 법이다.

 

초등 저학년 교실이 연일 난장판이 되는 까닭은 메타인지 능력의 결핍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교육이란 그러한 야생성을 문화적 자질로 바꿔주는 사업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메타인지 역량의 함양을 통해 가능한데, 글쓰기교육은 그 첩경이라 할 수 있다. 글쓰기가 어려우면 그림그리기도 좋다. 글이든 그림이든 자신의 생각을 대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역량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수업에서 아이들이 올리는 댓글에서 사고 수준이 나타난다. 초3의 발달단계상 많은 아이들이 대자적 글을 쓰는데, 간혹 대타적 글귀를 접할 때 아이의 인품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아이지만 확신컨대 그런 아이가 교사와 친구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는 없다.

인성과 지성은 함께 간다.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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