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부모에게

선행학습에 대하여

리틀윙 2020. 4. 4. 21:32


코로나 사태로 사상 초유의 3월 휴업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3주 동안이나 아이들을 집에서 보호하자니 학부모님들의 근심과 걱정이 깊어만 갑니다. 이에 담임교사 입장에서 어떻게 학부모님들을 도울까 고민을 적잖이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이 떠올라 학부모님들께 드리는 것입니다.


학부모님 입장에서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내는 자체가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많은 학교/학급에서 학부모님들께 아이들 공부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떠도는 학습사이트를 둘러 봤는데, 유감스럽게도 모두 현 3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선행학습’을 안내하고 있는 겁니다.


단호히 말해, 이것은 교육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선행학습은 학생 개인을 망치고 반 전체를 망치고 나아가 국가를 망치는 망국적인 교육병폐입니다. 그 까닭에 대해 같이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유명한 교육학자 브루너(Bruner, J.)란 분은 교사가 잘 가르치고 학생이 잘 배우는 성공적인 수업의 첫째 조건으로 ‘학습의욕’을 지적하였습니다. 학생이 배우려는 마음이 있어야 교사도 잘 가르칠 수 있다는 겁니다. 브루너는 이 학습의욕의 전제조건으로 “적절한 수준의 불확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해당 학습 과업(수업제재)에 대해 학생들이 적당히 모르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곱셈을 배우는데 덧셈도 모르고 있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과도한 불확실성). 반면, 한자리수 곱셈을 배우는데 이미 두자리수 곱셈까지 다 알고 있는 아이는 ‘학습의욕’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과도한 확실성). 여기서 ‘선행학습’의 폐단은 후자와 관계있습니다. 즉,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미리 학원이나 가정에서 학습지공부를 통해 알고 오는 경우가 선행학습입니다. 이런 아이가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 할 리가 없습니다.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는 수업시간에 한 눈을 팔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것은 물론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집중을 하지 않아 학업성취수준이 중간 정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으로, ‘선행학습’이 반 전체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이치에 대해 논해보겠습니다. 모든 수업에서 교사가 맨 먼저 할 일은 학습주제와 관련한 학생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쫙쫙 빨아들이는 교사가 수업을 잘 하는 교사라 할 수 있습니다. 호기심 유발은 교사-학생 사이의 ‘묻고 답하기’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교사는 그 시간에 배울 내용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질문을 주고받음으로써 학습주제를 환기시킨 다음 그 연장선상에서 오늘 배울 내용에 관한 문제를 던집니다. 이때 학생들은 즉시 대답할 수 없어야 하니, 이게 브루너가 말한 “적절한 불확실성”입니다. 대개 이 순간에는 오랜 정적이 흐릅니다. 학생들이 교사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두뇌를 바삐 돌리지만 “완성된 형태의 답”은 안 나옵니다. 그것은 수업의 최종 지점에서 발견할 성질의 것이니까요. 그런데 선행학습을 해온 아이가 그 답을 말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한마디로 수업이 망합니다. 교사가 어렵사리 고조시켜 놓은 학생들의 호기심과 성취의욕이 이 아이로 말미암아 와르르 무너지는 겁니다.


선행학습은 학생의 성장과 성공적인 수업에 절대적으로 해가 되는 독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존경하는 학부모님들께서 이 시기에 아이들에게 교과서 공부를 안내하거나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조금만 참아주시면 개학이 시작될 때 우리 아이들이 교과서 공부를 재미있게 열심히 배우도록 이끌겠습니다.


(물론, 선행학습이 아닌 의미 있는 학습활동은 얼마든지 해도 되고 또 해야 합니다. 독서가 그 좋은 예죠. 다음 글에서는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