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61

교원평가 3

교원평가에서 한 학생으로부터 욕설 봉변을 당한 그 여선생님은 미술 학원을 운영하다가 학생 교육에 각별한 열정을 품고 늦깎이로 학교 교사가 된 분이시라 한다. 그런 만큼 평소 수업 준비도 많이 하시고 학생들에게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시는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만족도 조사에서 많은 학생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한 학생들이 남긴 풍성한 호평은 단 한 명의 악동이 무심히 던진 한 마디의 욕설을 상쇄하지 못한다. 교사는 AI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지닌 인간에게 어떤 활동에 대한 보람과 희열은 손익계산서로 환원되지 않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렇듯 교원평가는 교육적으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많기 때문에 작년에 실시하지 않길래 우리 교사들은 교육부가 이 제..

교육을 말한다 2022.01.23

교원평가 2

초중고 12년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노라면 사실 존경스러운 스승이 잘 없다. 그리고 교사가 되어 현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의 학교와 교사 모습도 크게 내 학창 시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력과 억압 그리고 촌지로 얼룩진 교단의 풍속도가 너무 싫었고 그들과 동화되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이 전교조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참교육을 신봉하며 정말이지 치열하게 실천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학부모 편에 섰다. 그 덕분에 동료 교사들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정의는 약자 편에 있다고 믿는다. 그 시절엔 학부모가 약자였다. 그러나 지금 학교는 완전히 딴 세상이 됐다. 교사-학부모의 역학관계가 전도되었다. 학부모에게 교사는 더 이상 갑이 아닌 을의 처지에 있다. 학생에..

교육을 말한다 2022.01.23

교원평가 1

해마다 이맘때 교사들을 우울하게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교원평가다. 정확한 명칭은 ‘교원능력개발평가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인데, 이를 통해 교원의 능력이 개발되는 것은 티끌만큼도 없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교원평가를 도입할 때의 의도는 부적격 교사를 교단에서 축출하거나 교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런데 지금 10여 년이 지나고 있지만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결실을 거둔 것은 전혀 없이 그저 선량한 절대다수의 교사들 힘 빼는 결과만 내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의 만족도를 평가하는데, 대다수의 평가 참가자들은 웬만하면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그래서 혹 앙심을 품은 극소수가 ‘별점 테러’를 해도 평균 점수는 높게 나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학생-학부모가 남기는 서술형 평가 글귀다..

교육을 말한다 2022.01.23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 하라

초임교사 시절 어느 학교에서 음악 시범수업을 참관했다. 지역에서 나름 음악교육 전문가로 이름이 나있는 분의 수업이었다. 역시 베테랑답게 적절한 테크닉으로 수업을 잘 진행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 분이 수업시간 내내 아이들을 너무 엄격하게 다루시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유능한 음악교사의 지도하에 아이들은 악기는 잘 다루었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흡사 장간감 병정을 보는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협의 시간에 참관 교사들의 호평이 이어졌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음악 지도 역량은 탁월하되 음악의 본질적인 가치를 비껴가는 과오가 그 빛나는 장점을 질식시킨다고 생각했다. 존재론적으로 음악은 즐거움을 생명으로 한다. 음악(音樂)에서 한자어 ‘樂’이 음악 ‘악’과 즐거울 ‘락’, 좋아할 ‘요’의 세 글..

교육을 말한다 2021.02.09

교사 교육과정

교육과정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 보통 국가수준-지역수준-학교수준의 세 단위로 나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교육은 국가수준도 지역(시도교육청)수준도 학교수준도 아닌 교실수준의 교육과정 형태로 이루어진다. 왜냐? 교육은 궁극적으로 교사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손끝에서 맺어지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은 여러 교과들로 이루어져 있고 각 교과는 여러 영역들로 세분화된다. 이를테면 영어교육에서는 말하기/듣기, 독해, 문법 등의 대영역이 있고 세부적으로는 발음, 어휘력, 구문이해력 등의 역량 요소들이 있다. 자, 여기서 생각해보자. 초등교사가 모든 교과목에 능통할 수 없다. 이를테면 국영수는 잘 가르쳐도 예체능 교과는 자신이 없을 수 있다. 특정 교과를 가르치는 중등교사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음악교사의 예를 들면, 피아노..

교육을 말한다 2021.02.09

머리와 가슴

일상 속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라 그것을 글로 남기고 싶을 때가 있다.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보고 자신의 상념을 감상문의 형식으로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작업은 즉각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못 쓴다. 병뚜껑을 열어 놓은 소주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술맛이 가셔버리는 것처럼, 글을 쓰기 위한 우리의 정신도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어 버린다. 떠오른 생각을 즉시 기록해두더라도 다음 날 글 작업을 하려 하면 글이 잘 안 써진다.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두 요소인 이성과 감성 가운데 전자는 보존되었으되 후자의 휘발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우리의 사고가 머리와 가슴 가운데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하는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머리가 가슴을 ..

교육을 말한다 2021.01.27

아는 만큼 쓸 수 있다

교사에게 제일 바쁜 시기가 이때다. 한해의 학사일정을 마무리 하는 시기여서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 주에 제일 어렵고 중요한 과업이 생활기록부 작성이다. 우리들 학창시절이나 내 초임교사시절만 해도 교사 입장에서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기는 쉬웠다. 성적이 수-우-미-양-가 체제로 되어 있었으며 또 수기로 작성하기 때문에 몆 글자만 긁적여 넣으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전 교과의 학업발달사항을 문장으로 기술해야 하고 컴퓨터로 작성하기 때문에 입력할 글자 수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다. 컴퓨터 작성의 장점도 있다. 예년에 작업한 내용을 토대로 기존 문장을 적절히 수정한 뒤 복사해서 붙여 넣기를 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에 맡은 학년을 담임할 경우에는 일이 한결 수월하다. 무엇보다, 나처럼 악필인 사람은 ..

교육을 말한다 2021.01.27

드럼 바이러스

요즘 우리 반에 팬데믹까지는 아니지만 어떤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으니 그 이름은 ‘드럼 신드롬’이다. 이 아이는 처음에 토요방과후 기타반에 들었다가 기타에 적응을 못해 드럼으로 전과(?)시킨 학습자다. 기타 배울 때는 그렇게 힘들어 하더니 드럼을 배운 뒤로는 매일 드럼 치고 싶어 환장하는 모양새다. 아마 이 아이는 식탁에 앉을 때 반찬 그릇이 드럼 북으로 보일 것 같다. 우리가 당구에 미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기타와 달리 드럼에는 흥미도 많고 소질도 꽤 있는 편이다. 지금 영상은 아이 몰래 찍은 것인데(드럼 연주에 흠뻑 몰입해서 내가 촬영하는 것도 몰랐다), 다양한 리듬을 나름대로 조합하여 필인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는 내가 아직 가르치지 않은 과정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 자기 생각대로 잘 ..

교육을 말한다 2021.01.27

문학을 시험지 속으로 가져가는 순간. . .

2004년 서울시교육청 수능모의고사에서 ‘아마존수족관’이란 시에 관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를 쓴 최승호 시인에게 문제를 풀게 했더니 두 문제 다 틀리는 촌극이 발생했다. 이에 시인은 “이 시의 주제가 뭐냐? 시의 사조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 묻는 게 수능시험이다. 그런 가르침은 가래침 같은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5지선다형 시험에 내재된 치명적인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점에서 수능 제도가 일대 위기에 봉착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수능 출제 위원이었던 교수는 시인의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 수능 역사 15년 동안 시의 사조나 시인이 어느 동인 출신이냐고 묻는 문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수능에서는 문학 작품에 관한 단순 지식이 아니라..

교육을 말한다 2021.01.27

우월한 수능성적이 우월한 지적 역량을 보증하는가?

영어몰입교육이 한창 강조될 시기였다. 초등 현장에서 영어전담교사들에게 영어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증표로 TOEIC 또는 TEPS 시험 응시가 권장되는 분위기에 편승해 나도 몇 번 도전해봤다. 토익은 한 번, 텝스는 두 번인가 쳤는데 점수가 그리 높지 않았다. 토익은 700 후반, 토플은 600 후반의 점수였다. 생각보다 점수가 낮게 나와서 속상했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서 다시 도전해볼 생각은 접었다. 빈 말이 아니라 마음먹고 몇 달 준비하면 150점 정도는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보다 영어공부에 각별히 욕심이 많은 사람임에도 내가 재도전을 하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영어 실력 증진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사를 목적으로 하는 취준생이라면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토익 시험이 요구..

교육을 말한다 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