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교사 교육과정

리틀윙 2021. 2. 9. 07:48

교육과정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 보통 국가수준-지역수준-학교수준의 세 단위로 나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교육은 국가수준도 지역(시도교육청)수준도 학교수준도 아닌 교실수준의 교육과정 형태로 이루어진다. 왜냐? 교육은 궁극적으로 교사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손끝에서 맺어지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은 여러 교과들로 이루어져 있고 각 교과는 여러 영역들로 세분화된다. 이를테면 영어교육에서는 말하기/듣기, 독해, 문법 등의 대영역이 있고 세부적으로는 발음, 어휘력, 구문이해력 등의 역량 요소들이 있다.

 

자, 여기서 생각해보자. 초등교사가 모든 교과목에 능통할 수 없다. 이를테면 국영수는 잘 가르쳐도 예체능 교과는 자신이 없을 수 있다. 특정 교과를 가르치는 중등교사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음악교사의 예를 들면,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은 성악 파트보다 기악 파트에 더 유능할 것이고, 서양음악에 비해 국악 지도는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수준-지역수준-학교수준의 형식적 교육과정은 개별 교사들에 내재한 특수한 역량 또는 한계를 무시하고 “획일화된 교육과정의 운영"을 강요한다. 학생의 성장이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런 천편일률적인 지침이 과연 바람직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교육과정 운영에서 저마다 다른 교사 특성을 고려하여 교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줘야 한다. 영어에는 자신이 없지만 음악에는 유능한 초등교사는 영어 수업보다 음악 수업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교과별 법정시수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허용해줘야 한다. 또한, 중등 영어 교사 가운데 문법에 강점을 지닌 경우는 문법 지도를, 발음에 유능한 교사는 발음 지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학생의 성장에 바람직하다. 음악교사는 자신의 전공(작곡, 기악, 성악, 국악)에 따른 수업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렇게 수업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실행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움에도 교사들은 마음 한 구석에서 자신이 어떤 편법을 범하고 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불편으로 자유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당신이 옳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편법이 아니라 교육이 교사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끝맺는 교육원리상 그럴 수밖에 없고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필연성과 정당성 그 자체다.

 

다행히도 현행 교육과정에서는 교과 간의 경계가 예전처럼 지나치게 엄격히 구분되지 않으며 또 교과 간의 통섭(융합교육과정)이 중요시되며 프로젝트 수업이 권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6학년 교사가 영어수업 시간에 이를테면 Don McLean의 ‘Vincent’라는 노래를 지도하면 영어+음악+미술+역사 수업을 한 것으로 간주된다. 팝 음악에 조예가 있고 영어발음과 음악적 역량이 뛰어난 교사가 이런 수업을 많이 하여 학생들에게 영어 공부에 대한 흥미와 학습 의욕을 고취한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형태의 교육과정 실행이 없으리라.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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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았다>

 

2009년 이명박 정권기에 영어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한창 고조되던 때였다. 영어로 수업하기(TEE, Teaching English in English)가 거의 강제되다시피 하여 학교에서는 영어업무나 영어전담교사를 기피했다. 아무도 안 하려 해서 내가 영어전담에 영어업무를 떠맡았다.

 

영어전담교사로 3학년과 6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정말 열심히 신명나게 가르쳤다. 어떤 수업이든 교사가 신명나게 가르치면 아이들도 열심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난생 처음 영어를 배우는 3학년 아이들은 1주일에 1시간 있는 나의 영어수업을 정말 좋아했다. 담임선생님들도 “도대체 선생님께서 수업을 어떻게 하시길래 아이들이 영어수업을 너무 기다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이들을 영어에 빠져들게 만든 나의 비법은 ‘영어노래’였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내 생각에 덜 중요하다싶은 것은 제거하고 그 자리를 영어노래 지도로 채웠다. 이 노래들은 모두 교과서 밖의 음악들로 멜로디가 아이들의 흥미를 끌고 노랫말이 교육적인 소재들로 채웠다. 자랑이 아니라 나는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고 또 아이들이 흥미 있게 배울 수 있는 영어노래 레퍼토리를 많이 알고 있다.

 

조기 영어공부에서 노래로 영어를 배우면 장점이 굉장히 많다. 비고츠키는 놀이(play)가 근접발달영역(ZPD)을 창출하기 때문에 그냥 배우는 것보다 놀이를 통해 배우면 훨씬 잘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영어동요나 팝송으로 영어를 배우면 그 속에 있는 영어 단어 같은 것을 책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노래를 통한 영어 공부의 가장 큰 장점은 발음이 좋아지는 점이다. 사실, 동양인이 영어를 배울 때 가장 큰 벽이 ‘발음’이다. 특히 조기 영어교육에서 발음은 정말 중요하다. 그럼에도 초등영어교육과정에서는 정확성(accuracy)보다 유창성(fluency)을 강조하기 때문에 발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고 한다. 내가 볼 때 이 지침(매뉴얼)은 학생을 위한 배려라기보다 교사를 위한 배려로 보인다. 사실 교사가 발음이 좋으면 아이들 발음도 저절로 좋아진다. 교사가 어려운 영어발음을 쉽게 하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시범을 통해 가르치면 초등학생들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발음을 따라한다.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건 상식인데, 첫걸음 단계에서 아이들이 잉글리쉬가 아닌 콩글리쉬를 배워도 무방하단 말인가?

 

영어노래의 선정은 가급적 교육과정과 연계되도록 선정을 하지만 부득불 그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점은 나만의 영어수업이 지니는 한계일 수 있다. 그래서 비율로 따지면 전체 수업을 100으로 볼 때 70은 교과서에 충실하고 30을 나만의 영어노래 수업으로 가져간 것이다. 때문에 나의 영어수업은 보편적인 수업에 비해 교과서에 불충실한 점에서 문제가 지적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내게 너무나 뼈아픈 결과로 닥쳐왔다.

 

그 해 11월에 도학력고사를 쳤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의 영어성적이 낮게 나왔다는 통보를 받았다. 스포츠 감독은 팀성적으로 평가를 받고 교사는 학생들의 시험성적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신세가 됐다. 그것으로 나는 “영어를 못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그 뒤 다시는 영어전담을 맡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구미의 어느 병원에서 진료 대기하던 중 옛 제자를 만났다. 고3인데 그 해에 6학년으로서 내게 영어를 배운 아이였다. 아이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던 것이, “선생님께 영어 배울 때가 제일 재미있었고 또 가장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12년 전의 일인데, 지금 내가 다른 교과는 몰라도 영어 하나 만큼은 잘 가르치는 교사라 자부한다. 그리고 다만 시험성적이 안 좋았을 뿐 그때도 영어를 잘 가르쳤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교사인 분들은 아실 것이다. 나의 실력과 아이들 시험 성적은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것을.

 

그 시절에는 지금과 달리 영어책이 국정교과서였다. 도학력고사의 시험 문항은 교과서를 바탕으로 출제하다 보니 교과서에 충실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내 수업을 받은 학생들보다 점수가 잘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시험 결과는 객관적인 실력으로 볼 수 없다. 제대로 된 시험, 이를테면 수능시험에서는 특정 교과서의 지문이 그대로 국어 시험에 출제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학교마다 서로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채택하여 수업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무엇보다 도학력고사 자체가 폐지되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다르다. 교사의 본분은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것이지 교과서를 가르치는 게 아니다. 장학사들이 교사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좋은 수업은 교과서 없이 하는 수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도학력고사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 위주로 시험을 친다면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게 된다.

 

교사가 어떻게 학생을 가르쳐야 교육과정에 충실하는 것일까? 교육과정의 본질이 뭔가? 나는 이에 대한 답의 핵심이 “흥미”라고 생각한다. 존 듀이는 학교교육이 “흥미에 의한, 흥미를 위한, 흥미의” 교육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험성적을 잘 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아이들이 영어공부에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하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영어 발음 하나는 아이들에게 정확히 지도한다고 자부한다. 시험점수로 교사를 평가한다면, 발음을 중요시여기고 철저히 지도하는 교수법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발음은 시험에서 다루지 않는 역량이기 때문이다.

 

영어발음이 좋으면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무슨 공부든 흥미와 자신감은 앞으로의 발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밑천으로 작용하거늘... 나의 영어수업 방법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영어교사가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옳다는 것이다. 발음에 자신이 없고 문법에 강한 중등교사는 학생들에게 문법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게 하는 수업에 비중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3수험생에겐 이런 선생님이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교육과정의 본질은 “교사 교육과정”이다. 특정 교사의 장점과 특기를 최대한 발휘하여 교육과정을 자기 나름으로 재구성해서 가르치도록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러자면, 일제고사를 안 쳐야 한다. 시험을 치려면, 수업을 한 교사가 자신이 학생들에게 가르친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평가도구를 제작하도록 '평가의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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