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 하라

리틀윙 2021. 2. 9. 07:50

초임교사 시절 어느 학교에서 음악 시범수업을 참관했다. 지역에서 나름 음악교육 전문가로 이름이 나있는 분의 수업이었다. 역시 베테랑답게 적절한 테크닉으로 수업을 잘 진행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 분이 수업시간 내내 아이들을 너무 엄격하게 다루시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유능한 음악교사의 지도하에 아이들은 악기는 잘 다루었지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흡사 장간감 병정을 보는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협의 시간에 참관 교사들의 호평이 이어졌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음악 지도 역량은 탁월하되 음악의 본질적인 가치를 비껴가는 과오가 그 빛나는 장점을 질식시킨다고 생각했다. 존재론적으로 음악은 즐거움을 생명으로 한다. 음악(音樂)에서 한자어 ‘樂’이 음악 ‘악’과 즐거울 ‘락’, 좋아할 ‘요’의 세 글자로 동시에 쓰이는 것에서 보듯, 무릇 음악 활동은 즐거워야 한다. 슬픈 음악을 연주할 때도 진정한 뮤지션은 음악에 몰입되어 음악과 자신이 하나 되는 무아지경에 이른다. 이것이 음악(音樂)의 낙(樂)이다.

 

어릴 때 운동회가 무지하게 싫었다. 그렇다고 내가 운동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모든 (남자) 아이들은 ‘스포츠광’인 법이다. 움직이고 달리고 몸을 던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그런데 내 기억에 남아있는 운동회는 신나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운동회 연습 과정에서 줄이 안 맞다고 행진할 때 발이 안 맞다고 두들겨 맞고 단체 기합 받고 한 것, 그리고 매캐한 흙먼지 냄새가 전부다. 이런 운동회가 어찌 즐겁겠는가?

 

음악과 체육은 "즐거운 활동을 통해 심미적 감수성과 몸도 마음도 건강한 전인격을 지닌 아이를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표다. 그런데 어떤 교실이나 어떤 학교에서는 이러한 표면적 교육과정과 무관하게, 아이들이 “음악과 체육은 괴로운 것이라는 것”을 학습한다. 이것이 ‘잠재적 교육과정’이다. 표면적 교육과정과 잠재적 교육과정이 상충될 때 잠재적 교육과정이 훨씬 위력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교육학의 상식이다.

 

음악이든 체육이든 수학이든 과학이든 영어든 국어든 모든 공부는 일단 즐거워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 활동 혹은 학문의 흥미를 갖게 해야 한다. 흥미는 모든 공부의 동력(동기)인 동시에 궁극적인 목표이어야 한다. 훌륭한 수학교사의 자질은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한 흥미를 가르치는 것이다. 여러 권의 문제집을 풀면서 수학 시험에서 매번 만점을 받되 수학에 흥미를 잃어가는 아이보다 평균 80점 밖에 안 돼도 수학에 흥미를 붙여가는 아이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훨씬 유익하다. 전자는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밖에 못되지만 후자는 세계적인 수학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활동에 흥미가 있으면 실력은 저절로 향상될 수밖에 없다. 내가 남들보다 영어를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것은 영어에 대한 흥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나는 영어 공부를 머리 싸매고 억지로 한 적이 없다. 문법 공부로 성문 영어를 공부할 때도 나는 심오한 뜻을 품은 영문장 하나하나를 해석해가면서 지적 희열을 느꼈다. 누구든 자신이 흥미를 품은 팝송 가사를 해석할 때 ‘숙제 하는 기분’으로 하는 사람은 없다. 흥미를 품으면 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교육에서도 제일 중요한 관건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과 공부에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다.

 

>> 아이로 하여금 바다를 사랑하게 하려면 배 만드는 법만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 배로만 바다로 나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아이는 바다로 나가려 할 것이다. - 생떽쥐베리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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