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교원평가 1

리틀윙 2022. 1. 23. 18:25
해마다 이맘때 교사들을 우울하게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교원평가다. 정확한 명칭은 ‘교원능력개발평가 학생-학부모 만족도 조사’인데, 이를 통해 교원의 능력이 개발되는 것은 티끌만큼도 없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교원평가를 도입할 때의 의도는 부적격 교사를 교단에서 축출하거나 교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런데 지금 10여 년이 지나고 있지만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결실을 거둔 것은 전혀 없이 그저 선량한 절대다수의 교사들 힘 빼는 결과만 내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의 만족도를 평가하는데, 대다수의 평가 참가자들은 웬만하면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그래서 혹 앙심을 품은 극소수가 ‘별점 테러’를 해도 평균 점수는 높게 나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학생-학부모가 남기는 서술형 평가 글귀다. 올해 나와 같은 연배의 동료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그런 테러를 겪고 심한 내상을 입으셨다. 이분은 아이들에게 정말 잘 하시고 또 열심히 가르치신다. 이 불상사 또한 그 각별한 애살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보여 진다.
 
학생-학부모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아니 정확히 말해 교원평가로부터 상처받지 않으려면, 학업이나 학교생활에서 나태함을 보이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다 끌고 가려는 열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학교생활에서 나태함을 보이는 아이는 부모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수업이 시작되어도 등교하지 않아 1교시 마치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면 부모도 아이도 아직 자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 아이를 바로 잡기 위해 교사는 부모에게 협조를 구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학부모는 이런 교사의 자세가 달갑지 않다. 아이를 제 시간에 일어나게 하려면 자신부터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 꼰대이즘을 발동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더 친절하고 더 자애로운 지도와 안내를 베푸셨더라면 험한 꼴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래서 교원평가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지 모른다. 지금 좋은 교사를 내년에 더 나은 교사로 만들겠다는 주마가편(走馬加鞭) 논리의 맹점은, 잘 달리고 있는 말을 더 잘 달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휘두른 가혹한 채찍을 견디다 못해 정년을 앞둔 원로교사가 명퇴를 한 일이 있었다. 학생은 서술평가의 ‘선생님께 바라는 점’ 칸에 “정년 해서 고독사하시길”이라는 글귀를 선생님께 안겨드렸다. 이 학생 때문에 계획에 없는 명퇴를 갑작스레 한 교사가 둘이나 된다고 한다. 나의 동료 교사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교직 생애 처음으로 명퇴 충동을 느낀다고 하신다.
 
최소한의 꼰대질도 없이 어떻게 교육이 가능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꼰대성으로 말하면 나의 동료 교사보다 내가 훨씬 더하다. 그런데 나는 우리 반 학부모님들로부터 좋은 글귀만 받았다. 숨죽이고 열어본 결과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우울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결과는 운이 좋았거나 아니면 갈등 사태에서 나의 안위를 위해 길 잃은 양을 포기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좋은 결과를 받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나쁜 결과를 받으면 명퇴를 고민하게 하여 이래저래 교사 힘만 빼는 교원평가는 결코 선량한 제도가 아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니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경구들을 무색게 하는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을 개탄한다. 스승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한국적 가치이다. 우리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고속 성장을 하게 된 것은 이러한 에토스에 힘입은 바가 크다. 최초 법제화될 때의 목적과 달리 부적격 교사가 아니라 선량한 교사를 교단으로부터 쫓아내는 이 불합리하고 반교육적인 교원평가제는 하루속히 폐지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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