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교원평가 3

리틀윙 2022. 1. 23. 18:27
교원평가에서 한 학생으로부터 욕설 봉변을 당한 그 여선생님은 미술 학원을 운영하다가 학생 교육에 각별한 열정을 품고 늦깎이로 학교 교사가 된 분이시라 한다. 그런 만큼 평소 수업 준비도 많이 하시고 학생들에게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시는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만족도 조사에서 많은 학생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한 학생들이 남긴 풍성한 호평은 단 한 명의 악동이 무심히 던진 한 마디의 욕설을 상쇄하지 못한다. 교사는 AI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지닌 인간에게 어떤 활동에 대한 보람과 희열은 손익계산서로 환원되지 않는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렇듯 교원평가는 교육적으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많기 때문에 작년에 실시하지 않길래 우리 교사들은 교육부가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폐지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올해 다시 시행되고 있는데 그 이유가 학부모 단체의 반발 때문이라고 한다. 기존 교원 상호간의 평가는 없어지고 학생과 학부모 평가만 남은 것을 보면 그 인과관계가 맞아떨어진다.
 
그렇다!
부적격 교사 퇴출이나 교원 능력 개발이라는 원래의 목적은 전혀 달성하지 못하고 심각한 부작용만 속출시키고 있는 이 비합리적인 제도가 폐지되지 않는 이유는 학부모의 반발심 혹은 학교와 교사를 향한 국민감정 때문이다. 이러한 기제가 학생 이익이나 교육 발전이라는 공익과 무관하게 그저 정서적으로만 작동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러한 집단정서는 교육 발전을 저해한다. 교육은 주로 철학과 소신의 문제인데 이 비합리적인 시스템으로부터 교사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민원공화국이다. 민원공화국에서 학부모와 교사 입장이 상충될 때 후자는 전자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사는 이 불합리한 제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스스로 강구해야 한다. 힘없는 교사가 교원평가라는 괴물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평가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 전략은 이미 많은 교사들이 행해오고 있었다. 주로 평가 결과가 걱정되는 교사들로서 어찌 보면 진정 평가를 받아야 할 교사들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열어보는 사람은 자신은 괜찮은 교사라는 주관적 판단 하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확인하고 힘을 받으려는 심산이라 할 수 있다. 나도 그 한 사람인데 지금까지 다행히 좋은 메시지만을 받았다.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앞으로는 절대 열어보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우리 교사들이 이 불량한 제도를 폐지시키는 유일한 방책이 ‘무관심 전략’이라 생각한다. 어린 아이가 어른 보고 ‘메롱!’ 하고 달아날 때 이 악행을 근절시키는 최선이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부적절한 피드백을 받고 상처를 입은 어느 중학교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심사를 솔직히 피력하며 호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 순진한 리액션은 악동의 악행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생을 대하면 교원평가에 대한 녀석의 흥미도 사그러들 것이다.
 
학부모 입장에서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만을 어떤 식으로든 표출하려는 욕구가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욕구는 대체로 정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교사의 교육 활동에 대한 불만이나 부적격 교사에 대한 심판은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교원평가는 교육적 명분을 상실한 채 단지 학생과 학부모의 뒤틀린 욕망을 배설하는 창구로서만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더 많은 선량한 꼰대들이 내상을 입어야 이 소모적인 숨바꼭질이 멈춰질 것인가?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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