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머리와 가슴

리틀윙 2021. 1. 27. 11:38

일상 속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라 그것을 글로 남기고 싶을 때가 있다.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보고 자신의 상념을 감상문의 형식으로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작업은 즉각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못 쓴다. 병뚜껑을 열어 놓은 소주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술맛이 가셔버리는 것처럼, 글을 쓰기 위한 우리의 정신도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어 버린다.

 

떠오른 생각을 즉시 기록해두더라도 다음 날 글 작업을 하려 하면 글이 잘 안 써진다.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두 요소인 이성과 감성 가운데 전자는 보존되었으되 후자의 휘발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우리의 사고가 머리와 가슴 가운데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하는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머리가 가슴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가슴이 머리를 움직인다. 인간의 정신 작용을 이끄는 두 수레바퀴인 이성과 감성에서 감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사고를 잉태하는 것은 앎이 아니다. 사고는 욕구와 의향, 흥미와 충동, 정서와 감정을 포함하는 동기적(motivating) 의식 영역에서 비롯된다. 사고의 뒤에는 정서와 의지가 버티고 있다. 사고를 구름에 비유할 때 구름은 낱말의 빗방울을 뿌린다. 구름을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다. 사고의 구름은 동기라는 바람의 힘으로 작동된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어제의 감동은 기억에 남아 있다. 기록해뒀으면 보다 구체적인 형태의 글감으로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동기가 휘발된 상태에서는 글을 쓰기 어렵다. 자동차의 연료통에 기름이 채워져 있어도 시동을 걸지 않으면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 작용에 스파크를 일으키는 점화플러그의 역할을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닌 감성, 머리가 아닌 가슴이다.

 

차의 시동은 점화플러그와 배터리의 성능에 달려있다. 특히 요즘 같은 혹서기에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을 수 있으니 평소 점화플러그와 배터리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우리의 사고도 그러하다.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이성이 아무리 발달해 있어도 감성의 점화플러그가 무디면 정신작용의 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육에서 학생들의 감성을 계발하기 위한 노력이 정말 중요한다. 감성 교육은 학생들의 연령이 어릴수록 중요하다. 어린 아이들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도시의 아이들이 보다 많은 시간을 자연에 노출되도록 교육을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 위대한 예술작품을 가까이 하도록 할 것이며 음악, 미술, 문학, 연극, 무용 수업을 많이 배치해서 아이들이 자신의 심미적 정서를 마음껏 표출하도록 해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이끄는 두 축 가운데 감성은 이성 못지않게, 아니 이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자 했다. 독서나 토론을 통해 이성을 단련해가듯 감성 또한 끊임없이 계발해 가야 한다. 비고츠키는 우리의 사고가 말을 통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다고 했다. 말에는 입말과 글말이 있다. 입말에 비해 글말은 사고의 정교함이 더욱 요구되기 때문에 지성의 단련에서 글쓰기 과업은 정말 중요하다. 글쓰기가 어려운 어린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게 하는 것도 지성의 단련을 위한 동일한 효과가 있다. 아울러, 글쓰기, 그림 그리기, 음악 작곡하기, 신체로 표현하기(무용) 등의 모든 창작 활동의 동력은 머리보다는 가슴이기 때문에 순간의 정서가 휘발되기 전에 과업에 착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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