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아는 만큼 쓸 수 있다

리틀윙 2021. 1. 27. 11:34

교사에게 제일 바쁜 시기가 이때다. 한해의 학사일정을 마무리 하는 시기여서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 주에 제일 어렵고 중요한 과업이 생활기록부 작성이다. 우리들 학창시절이나 내 초임교사시절만 해도 교사 입장에서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기는 쉬웠다. 성적이 수-우-미-양-가 체제로 되어 있었으며 또 수기로 작성하기 때문에 몆 글자만 긁적여 넣으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전 교과의 학업발달사항을 문장으로 기술해야 하고 컴퓨터로 작성하기 때문에 입력할 글자 수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다.

 

컴퓨터 작성의 장점도 있다. 예년에 작업한 내용을 토대로 기존 문장을 적절히 수정한 뒤 복사해서 붙여 넣기를 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에 맡은 학년을 담임할 경우에는 일이 한결 수월하다. 무엇보다, 나처럼 악필인 사람은 글씨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컴퓨터 입력의 가장 큰 이점이다.

 

컴퓨터 작성에서 글씨 솜씨는 아무 문제가 안 되지만, 여전히 글 솜씨는 요구된다. 그나마 교과발달사항의 경우는 예년에 작성한 문구들 가운데 적당한 것을 골라 그대로 입력해도 대체로 통한다. 이를테면, “수학교과 전 영역의 학습능력이 양호하며 특히 연산문제를 능숙하게 해결함”이란 문장은 수학 학습능력이 우수한 모든 학생에게 그대로 쓸 수 있다.

 

하지만,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쉽지 않다. 이 속에는 3가지 즉, 학업발달, 예체능특기사항, 행동특성을 적는데 이 중 ‘행동특성’을 적기가 제일 어렵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학생의 장래를 생각하여 부정적인 뉘앙스를 피하고 우회적인 수사법을 구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학업성적과 달리 인간의 내면은 결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의 행동특성은 예년에 작성한 수십 개의 문장들 가운데 어느 한 가지로 환원이 가능하다. 기존 데이터의 범주 밖에 있는 경우라면 새로 작성해서 목록에 추가하면 된다. 그런데...... 나의 “문장력”으로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행동특성을 지닌 아이를 만나 애를 먹고 있다.

 

남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으면 그건 모르는 것과 같다!

내가 수업시간에 우리 아이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다. 교사가 어떤 어려운 질문을 던졌을 때 아이들은 “그게 뭔지 알겠는데 말로 설명을 하지 못하겠어요”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물을 이해하는 만큼 글을 쓸 수 있다. 어떤 글을 쓸 때 그 주제가 자신이 잘 알고 있거나 익숙한 것이라면 글을 술술 써내려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글이 잘 안 써진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에 대해 말로 설명하거나 글로 쓸 수 없으면 그것에 대해 무지하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도 두 가지 변인이 작용한다. 인식의 주체가 무능해서일 수도 있지만 인식의 대상이 너무 난해한 탓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교사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나머지 28명의 아이들의 행동특성은 파악이 되는데 이 한 아이는 안 된다는 것은 내가 그 아이에게 그만큼 무심했다는 방증이다. 지금부터라도 아이에게 관심을 품고 관찰하려 해도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는 것이 유감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너무 늦게 다가온다.

 

20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