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문학을 시험지 속으로 가져가는 순간. . .

리틀윙 2021. 1. 27. 09:42

2004년 서울시교육청 수능모의고사에서 ‘아마존수족관’이란 시에 관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를 쓴 최승호 시인에게 문제를 풀게 했더니 두 문제 다 틀리는 촌극이 발생했다. 이에 시인은 “이 시의 주제가 뭐냐? 시의 사조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 묻는 게 수능시험이다. 그런 가르침은 가래침 같은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5지선다형 시험에 내재된 치명적인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점에서 수능 제도가 일대 위기에 봉착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수능 출제 위원이었던 교수는 시인의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 수능 역사 15년 동안 시의 사조나 시인이 어느 동인 출신이냐고 묻는 문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수능에서는 문학 작품에 관한 단순 지식이 아니라 작품 이해 능력을 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이건 문제의 몸통은 제쳐놓고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옹색한 변명의 전형이라 하겠다. “시의 사조가 뭐냐?”는 물음이 제시되지 않으면 건강한 시험인가? 우리가 직시해야 할 팩트는 "어쨌거나 시를 쓴 작가가 자기 시의 의미에 관한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순이 발생하는 근본이유는 5지선다의 객관식 문항 일색인 수능 시험의 구조적 한계에 기인한다.

 

문제의 시가 “부정적 현실에 대한 인식을 품고 있다”고 본 출제자의 해석은 나름의 합리성을 담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의도를 비껴가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채점에서 시인의 의도는 오답으로 처리된다. 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작가의 몫이지만 정답과 오답에 대한 판별 권한은 오직 출제자에게 위임돼 있기 때문이다.

 

문학을 시험지 속으로 가져가는 순간 문학이기를 그친다!

최승호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시는 자유다. 시가 시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창작의 자유, 해석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해석(그것도 시인의 의도를 비껴가는)만을 정답으로 못 박는 것은 자유의 대립물인 “억압” 그 자체다. 이런 가래침 같은 가르침을 통해 학생들의 뇌리에서 시적 상상력은 말살되고 오직 획일적인 사고만 자리할 뿐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모든 청소년들은 문학소녀/소년이어야 한다. 릴케의 시를 읽으며 가슴이 뛰어야 정상이다.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 이 순결하고 귀한 영혼들에게 “다음 중 이 시에 대한 해석이 적절하지 않은 것은?”이라는 지적 고문을 해대는 것은 정신적 살인이고, 국가발전에도 해악한 사회적 자살행위에 다름 아니다.

 

2013년에 한 학생이 이 광란의 굿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머리가 심장을 갉아 먹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투신자살했다. 전교1등인 학생이었다.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