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말한다

교원평가 2

리틀윙 2022. 1. 23. 18:26
초중고 12년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노라면 사실 존경스러운 스승이 잘 없다. 그리고 교사가 되어 현장에 발을 내디뎠을 때의 학교와 교사 모습도 크게 내 학창 시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력과 억압 그리고 촌지로 얼룩진 교단의 풍속도가 너무 싫었고 그들과 동화되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이 전교조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참교육을 신봉하며 정말이지 치열하게 실천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학부모 편에 섰다. 그 덕분에 동료 교사들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정의는 약자 편에 있다고 믿는다. 그 시절엔 학부모가 약자였다.
 
그러나 지금 학교는 완전히 딴 세상이 됐다. 교사-학부모의 역학관계가 전도되었다. 학부모에게 교사는 더 이상 갑이 아닌 을의 처지에 있다. 학생에게도 함부로 못한다. 아무리 잘못해도 꿀밤 한 차례 가하지 못한다.
 
지난 글에서 “최소한의 꼰대질 없이는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땅의 교사들은 교원평가 잘 받기 위해, 아니 욕을 보지 않기 위해 교육자로서의 열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길 잃은 양이 제멋대로 살도록 방치해야 한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든 말든 내팽개쳐야 한다.
 
“자는데 자꾸 깨우잖아 씨발년이”

 
교원능력개발평가 학생만족도조사 서술형 평가에 선생님께 바라는 점을 써라 하니 한 중학생이 저런 글귀를 선생님께 안겨드렸다.
 
교원평가는 학생과 학부모가 평가자가 되고 항목별로 점수를 매기는 체크리스트 평가와 서술형 평가가 있다. 교사들은 체크리스트 평가는 별 신경 안 쓴다. 한두 사람이 별점 테러를 가해도 나머지 평가자들이 후하게 주기 때문에 학교 전체 평균이 90점을 상회한다.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서술형 평가에서 혹 모진 글귀를 받을까 하는 것이다. 자는 학생을 깨우는 미술 선생님이 평소 수업 준비를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 분인 걸 아는 동료 교사의 분노와 슬픔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어느 집단이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거늘, 교사집단도 예외일 수 없다. 교육계의 거센 반발에도 정부에서 교원평가를 강행할 때의 취지 또한 “부적격 교사를 교단으로부터 축출하고 교사들의 능력을 개발(그래서 지금 명칭이 교원능력개발평가다)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교원평가를 통해 부적격 교사를 걸러낸 사례는 내가 알기로 한 건도 없다. 그리고 이 평가를 통해 교원 능력이 개발될 것이라 믿는 교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평가가 교사에게 비상한 긴장감을 안기는 면에서 위력을 떨치는 것이 사실인데, 안타깝게도 그 위력은 위의 글귀에서처럼 선량한 꼰대에게 심대한 상처를 가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부적격 교사를 솎아 내기 위한 교원평가가 실제에 있어 건강한 꼰대들의 교육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심각한 역기능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빈대도 못 잡고 말이다.
 
페이스북에서 이런 글 올리면, “그래도 교원평가는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기시는 분들을 자주 접한다. 이런 심사의 배경에는 예외 없이 과거 학창시절 경험에 터한 교사 집단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분들의 뉘앙스는 교사들이 평가가 아닌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 유감이다.
 
이는 이성적인 관점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선생 같지 않은 선생들은 지금 교단에 있지 않은데, 왜 지금 무고한 젊은 교사들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그것도 학생 교육에 대한 열정이 각별한 교사들이.
 
어떤 분은 무작정 폐지를 주장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는데, 나는 교원평가는 폐지 외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교원평가가 어떤 최소한의 실익조차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한발 양보해서 약간의 이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폐해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이 제도는 폐지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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