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앞둔 며칠 전이었다. 방학식을 하는 날은 수업을 안 하고 점심도 안 먹고 일찍 집에 간다고 하니 아이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왜 수업 안 해요?” 한다.
방학식 날의 통상적인 일정인데 3학년 아이들은 아직 학교 일상에 익숙지 않아서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수업을 안 하는 것에 실망감을 내비치는 아이들은 내 교직생애에 처음 본다.
“얘들아, 수업 안 하면 좋은 거잖아? 너희들은 공부하는 게 좋니? 그럼 수업할까?” 했더니, “네! 수업해요.”라고 답한다.
모든 아이들의 속마음이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집단의 의사는 항상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몇몇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하지만 소수일지언정 학구적 열의를 지닌 학생들이 집단의 분위기를 지배해가는 것은 정말 고무적인 현상이다. 놀라운 것은 나머지 아이들도 이 지배적인 분위기에 편승하며 공부가 즐겁다는 “자기최면”을 걸어가는 것이다.
공부도 맛있게.
한 아이가 학급밴드에서 자신의 이름 옆에 붙인 글귀(상태메시지)다. 이 표현은 그 며칠 전에 내가 수업시간에 어떤 대목에서 아이들에게 심어준 경구다. 밥을 억지로 먹으면 몸에 탈이 나고 맛있게 먹을 때 우리 몸에 영양분으로 섭취되듯이 공부도 맛있게 해야 실력이 쑥쑥 성장한다고 말해주었다. 자칫 진부한 설교로 다가갈 수 있는 있는 말이 특히 이 아이의 뇌리에 강한 임팩트로 꽂혔던가보다.
열공!
열공 가즈아!
공부 열시미
그 뒤로 몇몇 아이들이 상태메시지를 장식하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수업시간에 한눈을 잘 파는 아이를 포함하여 한결같이 면학의 의지를 표방하고 있으니... 이게 초3교실인지 고3교실인지 어리둥절해진다.
두 교실 중 열공 의지가 어느 쪽이 강할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초3의 것이 고3의 것보다 백배 바람직하다. 전자는 내발적 동기 후자는 외발적 동기에서 비롯된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외발적 동기에 기초한 공부가 맛있을 수 없다. 이렇게 획득한 지식은 영혼을 살찌우거나 지성의 단련으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유통기한 또한 길지 않아서 동기 즉, 시험의 종료 이후 이내 소멸된다. 반면, 지적 호기심과 흥미에 안받침한 지식은 오래가며 무엇보다 공부에 점점 재미를 붙여가는 자양분으로 자리하는 점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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