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장승초

리틀윙 2022. 1. 23. 18:37
전북 장승초에 다녀왔다.
6학급의 소규모학교인 것은 알았는데 방금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교 현황을 보니 전교생 수가 89명이다. 보통 시골에서 6학급 규모의 학교는 보기 드물다. 대부분 4~5학급이고 전교생 수도 30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학교에서 한 반에 학생 수가 20명씩이나 되면 교사가 엄청 힘들다. 도시 학교의 경우보다 학급당 학생 수는 적지만 교사 업무가 엄청 많기 때문이다. 즉, 교사 입장에서는 그나마 학생 수가 적은 것이 시골 학교에 근무하는 낙이라 할 수 있는데 장승초는 이런 메리트도 없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이 학교에 근무하기 위해 순번을 기다리는 교사가 많다는 것이다. 이 뜻밖의 현상 속에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무릇 교육은 결국 교사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교사가 교육의 희망이다. 교사의 가능성이 곧 교육의 가능성이고 교사의 자질이 교육의 미래를 좌우함은 별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자명한 이치라 하겠다.
출퇴근 거리도 멀고 근무 여건도 안 좋은데 왜 교사들이 장승초에서 근무하고 싶어할까? 그 까닭은 생뚱맞게도 이런 학교에서는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의료 행위에 전념하듯이 교사가 학생 교육에 전념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건만, 현실 속의 학교에서 교사들은 교육 외적인 일, 즉 공문 처리 따위의 잡무나 보여주기 위주의 행사를 치르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반면, 장승초 같은 학교에서는 전시용 행사는 과감히 철폐하고 대신 진정으로 학생의 성장을 위한 교육 사업을 펼친다. 때문에 각별한 교육 열정이 준비되지 않은 교사들은 이런 학교를 기피한다. 어제는 방학 중이고 또 토요일인데도 학부모를 위한 행사를 열어 전체 교사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하니 이런 학교를 교사들이 달갑지 않아 하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장승초 교사들은 좀 이상한 사람들이라 하겠다. 하지만, 세상이 발전하는 것은 현명한 사람보다는 어리석은 사람의 비합리적인 열정에 말미암는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책 내용을 주제로 한 첫 강의 요청이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서 장승초의 분위기에 적응할 겸 1시간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강의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 학부모님들끼리 무슨 결정을 내리기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고 해서 기다렸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투표를 하기 때문에 10분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전에 실컷 토의를 하고 이제 투표만 남겨 놓은 시점에서 또 어떤 분이 일어서서 문제를 제기하는 통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장승초는 학부모님들도 좀 이상한 분들이다.
 
나 어릴 적 ‘멸공’이라는 구호가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하던 시절에 장승초 학부모님들처럼 말 많은 사람들은 불온시되었다. “말이 많으면 공산당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말이 많아야 한다. 회의 문화는 한 집단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학부모가 교사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마구 말을 쏟아내는 학교, 동료의 뒤늦은 문제 제기를 짜증 내지 않고 들어주는 집단의 배려와 인내가 장승 교육공동체의 건강성을 말해준다. (이 학교 홈페이지에 ‘인사말’이 학교장이 아닌 장승초 교육공동체의 이름으로 올려져 있다.)
 
 
이상한 교사와 이상한 학부모가 의기투합해서 몸도 정신도 건강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응원한다”는 의견을 세상을 향해 던지는 아이들이 이 학교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이 이상한 학교에서는 전체 학부모들에게 내 책을 사주고 읽어 오게 한 뒤 저자를 섭외하여 학부모 연수회를 연다. 강의 마치고 저자 사인을 받으러 오신 한 학부모님께서 살포시 “선생님 강의에서 보수와 진보가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말씀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라는 말씀을 하신다. 예전에 ‘이상한 사람들’은 죄다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진보에 약간의 부담감 내지 콤플렉스(혹은 거부감)를 지닌 분들이 함께 하는 것을 보니 장승교육공동체는 진짜 건강한 집단이다.
장승초에 호감이 가는 또 다른 요인이 마이산이다. 학교 교문을 나서니 바로 이 멋진 산이 보인다. 고속도로에서 커브를 도는데 처음 마이산이 내 눈에 들어왔을 때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사진으로만 본 마이산의 비범한 풍채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겪어보지 않은 분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마이산을 오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장승초도 그렇다. 이 학교에 다시 강의하러는 오고 싶어도 근무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내 영혼 속에 이상한 열정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202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