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애국가와 애국심

리틀윙 2021. 9. 9. 07:32

어제 우리 학년은 온라인 수업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는 바쁘다. 긴급히 논의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전에 학년 선생님들끼리 모여 회의를 했다. 회의 도중에 옆동 건물에서 아이들이 애국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방송으로 개학식을 하는 것이었다(일부 학년은 어제 개학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애국가를 너무 무성의하게 부르는 것이 나의 심기를 자극하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

 

3학년 아이들은 애국가를 부를 때 성실하게 부른다. 그런데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수록 더 나아져야 하는데 왜 더 못해지는 것일까?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국영수 실력이나 음악 체육 기능은 교육을 받을수록 더 나아지는 게 분명하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수록 더 나빠지는 것은 애국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 또한 학창 시절 애국가 부를 때 애국심을 담지 않았다. 애국조회라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인데,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은 듣기만 하면 되지만 애국가 제창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니 귀찮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애국가는 고음이 자주 나와서 부르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잠깐 팩트를 체크하자. 에끼타이 안(안익태)이 작곡한 애국가에서 “하느님이 보우하는 우리나라”는 원래 일본(만주국)이었다. 그런데 일제가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되면서 만주국 찬양가가 한국환상곡으로 둔갑하고 노랫말에서도 만주국이 ‘무궁화 삼천리’로 갈아탄 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이 작곡자의 혼이 대상화(objectification) 된 산물인데, 일제 괴뢰국 찬양가를 부르면서 애국심을 고취하고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는 것은 어찌 좀 이상하지 않은가?

 

다 좋다. “하느님이 보우하는 우리나라”의 오리지널 번지수가 어떠하든 지금 우리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애국심을 키워가면 된다고 치자. 그런데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조회할 때마다 부르면 애국심이 키워지는 게 아니라 애국조회(요즘은 애교조회 혹은 그냥 ‘조회’라 한다)에 대한 반발심이 커져가고 덩달아 애국가에 대한 애정은 식을 수밖에 없다. 3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성실하게 애국가를 부르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는 무슨 랩 부르듯이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이 아이들도 이를테면 어른이 되어 타국 생활을 할 때 애국가 부를 일이 있으면 조국과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며 목이 터져라 부를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들이 애국가를 성실하게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애국심이 불량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리하면, 애국가를 매개로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길러주는 것은 좋으나, 애국가를 너무 자주 부르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다는 말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애국가를 무려 4절씩이나 그것도 명절날 집안에서 부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분들이 다가오는 추석에도 그렇게 할 것인지 궁금증이 발동한다.

 

202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