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이기는 것보다 잘 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리틀윙 2021. 9. 9. 07:26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하계 올림픽이 2주간의 대장정을 마쳐 간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개최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일본 정부가 절박한 의지로 강행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살인적인 무더위와 태풍 예보로 난항이 예상되었음에도 큰 탈 없이 마무리 되는 듯하여 다행이다.

 

무관중으로 진행되어 예의 축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들이 발군의 실력을 펼치는 스포츠 본연의 감동은 변함없었다. 탁월한 운동 기능도 그러하지만 상대 선수를 배려하는 인간미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기 기량을 유감없이 펼친 것에 의의를 두는 스포츠맨십은 보는 이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선사하고 존경심을 자아냈다. 특히 여느 대회와 달리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태도에 뜨거운 갈채를 보내고 싶다.

 

한 20년 전쯤일 것 같다. 엘리트 스포츠 정책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였는데, 동계 올림픽 쇼트 트랙 경기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딴 우리 선수의 일그러진 모습을 조명하고 있었다. 시상대 위에 금은동 메달을 수상한 3인의 선수 가운데 동메달 딴 선수도 희색이 만연한 밝은 얼굴인데 은메달을 딴 우리 선수는 시무룩한 얼굴이어서 보는 이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금메달을 놓친 회한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에 옆 선수들이 악수를 청해도 근성으로 반응하는가 하면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할 때도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지라 처음에는 같은 국민으로서 1등을 못한 아쉬움에 공감했지만 급기야 ‘뭐 저런 선수가 있냐? 나라 망신 다 시킨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뒤 카메라가 그 선수를 따라가서 이유를 묻자, “한국사회에서 2등은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선수 개인의 품성 탓도 있지만, 저렴한 성적지상주의에 연연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 시스템에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결과보다는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경기력 자체에 의의를 품는 훈훈한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어서 흐뭇하다. 그 압권이 태권도 이다빈 선수가 결승전에서 패한 뒤 상대 선수에게 엄지척을 띄우는 장면이다.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노골드의 수모를 피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던 점에서 지도자들이나 선수 본인에게 그 경기가 특별히 중요했기에 영상 속의 인물처럼 추한 모습을 비칠 수도 있건만, 엄지척이라니... 이 얼마나 대견한가?

 

대회 중반에 6위까지 올랐다가 지금 13위로 추락했다. 예전보다 성적은 훨씬 안 좋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스포츠맨십은 최고다! 이다빈 선수 외에도 높이뛰기에서 4위로 밀려나 메달은 못 땄지만 한국 신기록을 세운 것에 크게 만족하며 함빡 웃음을 우상혁 선수, 메달권에는 못 들었지만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수영의 황선우 선수... 그 밖에 저급한 결과중심주의를 초월하여 “나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내가 모르는 많은 선수들에게도 큰 박수를 보낸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 인간 삶이다. 마찬가지로, 이기는 것보다 잘 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게 스포츠다. 비록 성적은 최악이지만 스포츠맨십에선 최고를 보여준 2020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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