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산타할아버지

리틀윙 2022. 1. 23. 18:28
10년 전쯤 4학년 담임할 때,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는 것을 알고서 깜짝 놀랐다. 그 뒤로 3학년 아이들에게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묻는데, 매번 긍정하는 입장과 부정하는 입장이 반반으로 나뉜다.
 
올해는 국어 수업에서 주장하는 글 단원을 배울 때 이 문제를 다뤄 의견을 물어봤다. 주장을 내세울 때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하면서,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각각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을 말해보자 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다.
 
#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
학생-1) 산타가 있기 때문에 선물을 받습니다. 산타 마을도 있는데 산타가 없겠어요? 산타는 굴뚝으로만 들어온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못 들어온다고 생각하는데, 창문이나 순간이동을 써서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학생-2) 본 적은 없지만, 저희에게 매년 선물을 주시고 부모님께서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 산타할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
학생-1) 일곱 살 때부터 이른 아침에 아빠가 선물을 놔두는 것을 보았고 아빠가 쿠팡으로 선물을 주문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면 지문이 남아있을 텐데 지문은 아빠와 엄마 것밖에 없었습니다.
학생-2) 실제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는 있다고 믿었지만 커서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산타할아버지를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보다시피, 긍정의 견해보다 부정의 견해가 논리나 합리성 면에서 좀 더 앞서 있다. 긍정하는 아이나 부정하는 아이 모두 사랑스럽다. 전자는 순진무구한 것이 좋고 후자는 명석함이 대견스럽다. 분명한 것은 전자의 아이도 조만간 후자로 옮아갈 것이라 생각할 때, 순진무구함 그 자체가 자랑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학생이 되어서도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정신치료를 요하는 문제일 뿐이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해보자.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이에게 찾아든 허망한 마음은 어떤 것일까? 인생의 쓰라린 맛을 경험한 점에서 그 순간은 괴롭겠지만, 그 실존적 무게를 딛고서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해질 것이기에 그것은 축복이다. No pain, no gain. 성장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