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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편지

‘스승의 날’을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어제 재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로부터 편지를 전달받으면서 알았다. 2019년에 이 학교에 부임해와서 3년째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데 첫해의 아이들이 무척 힘들었다.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말썽꾸러기들이었고 여자 아이들 중에도 성격이 거칠고 공격적인 아이들이 많아서 단 하루도 사건 사고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때 아이 가운데 두 여학생이 편지를 전하러 우리 교실에 들렀다. 실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아이다. 하나는 그 혼란스러운 집단 내에서 가장 반듯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이고 다른 하나는 내 교직생애에서 가장 “무질서한” 아이다. 앞의 아이가 편지를 주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울 바 없지만, 뒤의 아이는 정말 뜻밖이었다. 기초학습 능력이 바닥에 있어 공부 시간에 매..

교실살이-1 2021.06.17

언어의 왜곡은 현실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외래 개념 가운데 우리가 잘못 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온정주의가 그 한 예이다. 물 건너 온 개념은 반드시 그 원래 이름 즉, 원어가 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온정주의에 해당하는 원어는 paternalism이다. 위키피디어에서 이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 살펴보자. Paternalism is action limiting a person or group's liberty or autonomy which is intended to promote their own good. Paternalism can also imply that the behavior is against or regardless of the will of a person, or also that the behavior expresses ..

자녀교육 또한 능력의 문제다

미성숙한 아이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돌보는 성인으로부터 지대한 교육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갑니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에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점에서 부모는 아동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교육자입니다. 그런데 교육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가장 흔한 대답은 ‘사랑’일 겁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중요한 자질이 있습니다. 학생을 바르게 성장시키는 일은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의술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문제입니다. 환자를 사랑으로 대하지만 의학적으로 무능한 의사를 찾을 사람은 없습니다. 의술은 무엇보다 능력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교육 또한 능력의 문제입니다. ‘사랑’은 모든 부모에게 이미 주어진 자질입니다. 아동학대 사건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특별한 부모를 제외..

골프 예찬론

건강한 신체에는 건강한 정신이 깃들지 않는다. 신체 건강에 관한 나의 이 독특한 지론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A sound mind in a sound body”이라는 존 로크의 금언에 대한 반발로 지은 것이다. 책은 멀리 하면서 운동은 열심히 하는 사람은 대체로 지성이 빈곤한 경우가 많다는 생각에서 저 말을 즐겨 썼다. 지금도 나의 이 말이 틀렸다는 생각은 않지만, 신체 건강의 중요성 자체는 이견이 있을 수 없고 특히 나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에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오십 줄에 접어들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2016년에 맨 처음 검도를 했다. 평소 검도에 대해 특별한 호감이 있어서 입문했는데, 4개월 하고 접었다. 운동이 너무 힘들었던 탓도 있지만, 관장이 수시로 술자리를 만들어 불러대는 것이..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학폭위원회인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 문제로 몸살을 앓아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스포츠계와 연예계에서 ‘학폭 미투’가 확산됨에 따라 유명 스타들이 연이어 활동을 중지하거나 은퇴를 하여 국민들을 경악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죠. 이런 현실 속에서 학부모님들께서 사랑하는 자녀를 학교에 보낼 때 가장 염려되는 문제가 ‘혹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에 노출될까’ 하는 것일 겁니다. 유념할 것은, 지금 학교에서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대두되고 있는 점입니다.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을 선도한다는 취지로 2007년에 제정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 이후 정작 학교폭력의 진원지라 할 중고등학교에서는 학폭 사례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어떤 교육실천

해마다 이맘 때 진단평가를 치릅니다. 시험은 치르는 학생도 힘들지만 전체 학생의 시험지를 채점하고 성적을 내야하는 교사도 힘듭니다. 하지만 30년 넘게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일머리가 생겨납니다. 일머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단추를 잘 꿰는 겁니다. 이 일에서는 출석번호 순으로 시험지를 걷는 일이 그것입니다. 번호 순으로 걷으면 채점 결과를 일람표에 옮겨 적기도 쉬울 뿐더러 이름을 적지 않은 시험지의 소재 파악이 쉽습니다. 채점하는 일은 전적으로 교사의 몫이지만 시험지를 걷는 일은 아이들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전체 아이들이 번호 순서대로 일사불란하게 척척 움직여주면 좋지만 자기 차례에 제 때 나오지 않거나 시험지의 앞뒤 또는 위아래 면을 거꾸로 들고 와서 일을 성가시게 만드는 아이가 생겨납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원로 벌떡을 위한 학교는 없다

교직사회는 일정한 위계질서를 근간으로 영위되는 점에서 전형적인 관료조직이라 할 수 있다. 교무회의가 그 단적인 방증이다. 교무회의는 ‘직원협의회’로 통용되는데, 말이 ‘협의회’이지 협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업무담당자의 지시 또는 전달과 교감 교장의 ‘훈화 말씀’이 전부이다. 이 엄숙한 회의 석상에서 간혹 돌출적으로 일어나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교사가 있다. 이런 교사는 ‘벌떡교사’라는 낙인을 감수하는 점에서 비상한 용기와 소신의 소유자라 하겠다. 라때는 벌떡교사의 열에 아홉은 전교조교사들이었고 내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교조와 전혀 무관한” 벌떡교사들을 더러 보게 된다. 편의상 전자를 ‘전교조 벌떡’ 후자를 ‘신종 벌떡’이라 칭하기로 하자. 전교조 벌떡과 신종 벌떡 사이엔 중대..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착한 아이들과의 이별

성격상 누가 내게 도움을 주거나 호의를 베풀면 반드시 사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어떤 때는 고마운 마음을 너무 지나치게 표현해서 상대방이 불편해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런 성격은 좋은 것이 아니다. 자신이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 때 그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마음을 받지 못하면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 성격이 좀 별난 탓도 있지만 요즘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 각박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나 어릴 적에는 없이 살아도 마음은 넉넉했다.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생각하며 정을 나누며 살았다. 지금은 정을 안 주고 안 받는 삶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릴 때 도덕과 사회 시험에 단골 문제로 나왔던 ‘동방예의지국’이란 용어가 언제부터인지 자취를 감추었다. 동방예..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사람이냐 구조냐?

사람이냐 구조냐? 실로 인간 세상에서 빚어지는 대부분의 문제, 거의 모든 사회적 이슈는 이 물음으로 환원된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이에 관한 철학적 관점을 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못 벗어나는 이유나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학업성적이 낮은 이유에 대해, 개인의 의지나 노력의 문제로 볼 수도 있고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구조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사람이냐 구조냐”에서 사람이 문제라는 시각이 ‘보수’이고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시각이 ‘진보’에 해당한다고 보면 대체로 맞아 떨어진다. 여기서 어느 관점이 옳은가 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구조 가운데 어느 한 쪽의 중요성을 절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브라질의 교육사상가 파울루 프레이리는 “사람이냐 구조냐”에서..

카테고리 없음 2021.06.17

사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교사가 있다. 돈 벌러 학교 오는 사람과 돈만 벌러 오는 사람. 인류 구원의 사명을 띤 독수리5형제가 아닌 이상, 교사든 회사원이든 직업생활을 영위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생계유지를 위한 소득 확보, 즉 ‘돈벌이’다. 시쳇말로, “모든 게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 삶은 먹고 사는 게 전부일 수는 없다. 먹고 사는 게 전부인 삶과 먹고 사는 것 외의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삶, 이 둘 사이에서 동물과 인간의 삶이 구별되리라. 교육의 질은 교사의 자질을 능가할 수 없다. 나는 ‘교사의 자질’이란 의미를 “자기보존 외에 교육적 대의를 영혼에 품고 학생의 성장과 사회발전을 위해 최소한의 헌신을 하려는 의지”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의지를 지닌 교사를 ‘참교사’ 혹은 ..

카테고리 없음 202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