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언어의 왜곡은 현실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리틀윙 2021. 6. 17. 15:58

외래 개념 가운데 우리가 잘못 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온정주의가 그 한 예이다.

물 건너 온 개념은 반드시 그 원래 이름 즉, 원어가 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온정주의에 해당하는 원어는 paternalism이다. 위키피디어에서 이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 살펴보자.

 

Paternalism is action limiting a person or group's liberty or autonomy which is intended to promote their own good. Paternalism can also imply that the behavior is against or regardless of the will of a person, or also that the behavior expresses an attitude of superiority. Paternalism, paternalistic and paternalist have all been used as a pejorative.

온정주의란 “개인 혹은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타인의) 자유 혹은 자율성을 제한하는 행위”를 말한다. 온정주의는 개인의 의지에 반하거나 의지를 거스르는 행위 혹은 우월감을 표명하는 행위라는 의미를 함축하기도 한다. 온정주의, 온정주의적, 온정주의자라는 표현은 모두 부정적인(경멸적인 pejorative) 용법으로 쓰인다.

 

영어에서 pater는 ‘아버지’이고 여기서 파생된 형용사 paternal은 ‘아버지와 같은’이란 의미이다. paternalism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임을 생각할 때 ‘paternal’은 ‘가부장적인’ 혹은 ‘권위적인’이란 뉘앙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온정주의는 집단 내의 어떤 우월한 존재가, 아버지가 자식을 대하듯이, 즉 가부장적인 방식으로 자기 휘하의 사람들을 길들이는 태도를 뜻한다. 쉽게 말해 “불만 품지 말고 내 말 잘 들으면 좋은 일 생길 것”이라는 식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는 방식이 온정주의이다.

 

아버지가 자녀를 다루듯이 하는 지배방식을 뜻하는 점에서 온정주의는 폭력이나 억압을 통한 지배와는 거리가 있다. 즉, 약간의 따뜻한 인간적 정을 곁들인 지배방식인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paternalism’을 ‘온정주의’라 옮긴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두 가지 면에서 이 번역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는 앞서 말했듯이 그 핵심인 ‘권위적’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표상하지 않는 점이며, 둘째는 ‘온정’의 본질이 피지배자가 아닌 지배자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것임을 간과하는 점이다.

 

paternalism을 ‘온정주의’라는 엉터리 언어로 주조한(coin) 결과, 이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뉘앙스의 개념이 ‘값싼 동정론’이란 의미로 잘못 통용되고 있다. 문제는, 언어의 왜곡은 항상 현실의 왜곡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40분마다 1명씩 우리의 이웃이 자진해가는 이곳은 OECD 부동의 자살1위국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이 나라에선 모든 것이 넘쳐나지만 딱 한 가지 ‘온정’이 없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를 향해 품는 따뜻한 정(溫情)을 부정적 의미로 치부해 버린다면, 만인이 만인에 대해 야수가 되어 투쟁을 벌이는 패륜적 생존경쟁사회를 정당화하는 꼴이 된다. 즉, ‘온정주의’라는 개념은 paternalism 본래의 당파성과 정반대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셈이 된다.

 

온정주의 정부는 치명적 자만을 부른다?

머리에 지식이 많기에 대학교수를 하고 계시겠지만 참으로 씁쓸하다. 극우 사상가 하이에크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도 유감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복지정책을 ‘온정주의’라는 프레임으로 비난하는 이 분은 ‘paternalism’이라는 개념을 엉터리로 이해하고 왜곡해대는 반면교사의 표본이다. 하이에크가 예찬하는 신자유주의는 모든 사람이 하이에나처럼 서로 갈기갈기 짓이기며 살아가는 짐승이 되기를 강요하는 사상일 뿐이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놔두는 게 최선이라지만, 하이에나와 토끼가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놔두는 게 공정인가? 상위 10%가 국가 전체 부의 66%를 보유하고, 하위 50%는 단 2%를 보유하고 있는 이런 사회가 공정한가?

 

.............................

 

<오류 수정>

 

지난 글에서 ‘온정주의paternalism’에 관한 나의 진술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바로 잡는다.

 

온정주의의 개념에 대해 위키피디어의 설명을 근거로 의견을 펼쳤는데, 브리태니커 사전에서 내가 몰랐던 점을 발견하면서 앞글의 오류를 바로 잡고자 한다.

 

브리태니커에서는 온정주의라는 개념이 생성, 발전, 변화되어가는 역사적 흐름을 상세히 논하고 있다.

온정주의는 18세기에 칸트와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개념이 정립되었는데 그 내용은 앞글에서 논했듯이 ‘가부장적 권위’를 핵심으로 한다. 그런데 19세기를 지나 1970년대에 이르러 “빈곤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개입주의적 정책”을 뜻하는 의미로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로렌스 미드라는 학자는 이 "새로운" 의미의 온정주의를 “빈곤을 비롯한 여러 사회 문제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지도 감독에 나서는 사회 정책”으로 정의했다.(Lawrence Mead defined the “new” paternalism as “social policies aimed at the poor that attempt to reduce poverty and other social problems by directive and supervisory means.”)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는 영국에서 대처 수상에 의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태동되어 1980년대초 미국의 레이건 정부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러니까 이 새로운 ‘온정주의’ 개념은 자유시장주의를 옹호하는 극우 정치인들과 사상가들이 복지를 지향하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내가 지난 글에서 김인영 교수가 ‘온정주의’라는 용어를 그릇되게 사용했다는 비판은 잘못되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물론, 용어 사용 문제와 무관하게 이 분의 수구적 논점 자체는 여전히 비판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브리태니커에서도 적고 있듯이 ‘paternalism’은 그 어원인 ‘아버지의 paternal’라는 의미를 벗어나 다양한 맥락에서 쓰이는 혼란스러운(discursive) 용어법의 문제로 인해 용어 사용에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많다.

 

가장 흔한 오류는, 조직 사회에서 내부자의 비리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태도를 ‘온정주의’로 규정하는 것이다. 온정주의는 이런 의미와는 무관하다.

'교사가 시민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UFO  (0) 2021.06.17
학벌주의가 투영된 기형적 집단의식  (0) 2021.06.17
자녀교육 또한 능력의 문제다  (0) 2021.06.17
골프 예찬론  (0) 2021.06.17
한국의 개신교가 반공주의로 치닫는 까닭  (0) 2020.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