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한국의 개신교가 반공주의로 치닫는 까닭

리틀윙 2020. 9. 17. 16:35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사람

...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 특공대원

...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친일 문학가 서정주의 시 ‘마쓰이 오장 송가’의 일부분이다. 마쓰이는 경기도 출신의 21세 청년 인재웅이 창씨 개명한 이름이다. 마쓰이 히데오는 일본군 오장(우리의 하사계급)으로 복무하다가 레이테만 전투에서 가미가제로 미 군함에 돌진하여 전사하였다. 이에 일본 언론에서 천황을 위한 조선인의 숭고한 충정 모델로 대서특필하자 반도의 친일 시인 서정주가 저 따위 시를 써서 일제의 주구 노릇을 한 것이다.

 

서정주는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이자 일제의 패망 직전인 1944년에 저 추한 시를 지었는데, 훗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일본이 이토록 빨리 망할 줄은 몰랐다!

 

마쓰이 히데오의 빗나간 충정에 대한 찬양 작업에는 서정주 뿐만이 아니라 노천명과 이광수 등도 가세했다. 문학가라는 사람들이 저렇게 더러운 창작을 할 때는 아마 최소한 자신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대일본제국 천하가 지속될 걸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해방은 성경 표현을 빌리면 “도둑 같이 온 것”이다.

 

.

 

새날이 도둑같이 올 것을 몰랐던 것은 친일 종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3.1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정춘수 목사는 조선 감리교 대표가 된 뒤 친일로 돌아서서 적극적인 부역 행위를 한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교회를 팔아 일제에 군자금을 헌납했다. 이에 질세라,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전국 교회에 설치된 종을 일제에 헌납할 것을 제안하여 전국에서 1,540개의 종이 징수되었다. 그리고 많은 교회 목사들이 앞다투어 일제의 승승장구를 기원하는 기도회와 시국강연을 열기도 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훗날 이화여대의 총장을 지낸 김활란은 제자들에게 일제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종용하는 강연과 글을 썼던 위인인데, 한국에서 이름있는 대형교회 금란교회의 이름이 ‘김활란’에서 따온 것이다.

 

 

신앙이라는 인간행위의 특수성에 비추어, 종교지도자가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은 문필가들의 친일행각보다 훨씬 심각한 변절이 아닐 수 없다. 목사라는 사람이 교회를 팔아 군자금을 갖다 바치고 교회 종을 모아 전투기 제조에 쓰이도록 한 것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어떠한 이단의 악행보다 죄질이 나쁜 배교(背敎)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목사들은 십계명의 제일 으뜸가는 매뉴얼인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어겼다. 1938년 9월 전국 27개 교회에서 모인 목사와 장로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 주기도문과 황국신민선서를 함께 낭송하고 찬송가와 기미가요를 함께 불렀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대면예배를 자제해달라는 정부 방침에 “교인에게 예배는 목숨과도 같다”는 말을 한 목사들이 선배 종교지도자들의 적그리스도적 행각에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문제는 전자는 후자의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는 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건만(누가 5:26), 해방 이후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개신교의 반민족적, 반종교적 행각에 대한 반성과 과거사 청산을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다.

 

새 세상이 도둑 같이 도래했을 때 종교계의 친일부역자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들은 하나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오죽하면 전광훈 목사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 하겠는가).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현실세계의 권세인데, 일제가 물러간 뒤에 이 땅의 주인으로 들어선 미군정이나 짝퉁 독립운동지도자 이승만정권은 이들의 친일부역 전력을 문제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종교적 명분을 앞세운 ‘부적’을 무기로 일제강점기에 누렸던 것보다 더한 기득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이 아닌 지상에 세우고자 하는 이상주의자들을 사탄으로 규정하는 "반공"이라는 이름의 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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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는 마쓰이 오장을 칭송하는 시에서 미국을 ‘원수’라 일컬었다. 서정주 뿐만 아니라 조선의 청년 처녀들로 하여금 황국 군인이나 그들을 위로하는 위안부가 되도록 종용한 노천명, 김활란의 글에서도 미국은 철전지원수였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팔아 군자금을 제공하고 종을 녹여 전투기 제조에 쓰이도록 한 개신교 지도자들에게도 미국이라는 실체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인간 말종들이 세계 최고의 개신교 국가이자 강대국인 미국에 딱 걸린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거나, 인간역사에 일말의 사필귀정의 순리가 작용한다면 이 독사의 자식들은 깡그리 지옥불까지는 아니더라도 깜빵으로 향할 터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우하사, 이 기회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너무도 다행스러운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반공을 국시로 내거는 패권주의 국가인데 때마침 동서 냉전의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군정과 이승만에 이어 30년 군사독재 시절에는 ‘반공’이라는 마법이 더욱 큰 효력을 발휘했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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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일제강점기에는 자신의 나라를 짓밟은 적국의 귀신을 섬기는 신사참배를 하는가 하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는 악질 독재 권력에 편승하여 거대한 부를 축적하며 맘몬신을 섬겨오고 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태 6:33) 했건만, 1948년 4.3 제주에서 1960년 4.19에서 1980년 5.18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독재자의 총칼에 짖이겨갈 때, 개신교 지도자들은 침묵했다. 아니 침묵만 하면 좋으련만, 이들은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는 의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돌팔매질을 해댔다. 만약 예수님이 그 대오에 앞장서 계셨더라도 이들로부터 빨갱이로 몰렸을 것이다.

 

독재권력의 환심을 싸고 이 땅의 정의 실현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에 꼭 필요한 ‘빛과 소금’을 향해 ‘반공’이라는 올가미를 덮어씌우는 전략.

이것이 반민족 반종교적 오욕으로 점철된 한국의 개신교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정식이었다.

 

기독교 신학에 3위 일체(Holy Trinity)라는 개념이 있다. 한국의 개독들에게 3위 일체는 성부-성자-성신이 아니라 친일/친미-독재찬양-반공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며칠 전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 떠든 고영주에게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었다. 고영주는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악질 공안검사인데, 기독일보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한 것으로 검색되고 있다.

 

친일수구보수정당에서조차 ‘반공’ 프레임을 금기시하고,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고영주의 발언이나 ‘코로나 확산이 북한소행’이라는 전광훈의 말이 정신병자의 허언으로 치부되는 또 다른 새날이 왔다. 개신교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과거사에 대한 참회와 뼈를 깎는 환골탈태가 요청된다 할 것이다.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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