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시민에게

골프 예찬론

리틀윙 2021. 6. 17. 15:55

건강한 신체에는 건강한 정신이 깃들지 않는다.

신체 건강에 관한 나의 이 독특한 지론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A sound mind in a sound body”이라는 존 로크의 금언에 대한 반발로 지은 것이다. 책은 멀리 하면서 운동은 열심히 하는 사람은 대체로 지성이 빈곤한 경우가 많다는 생각에서 저 말을 즐겨 썼다. 지금도 나의 이 말이 틀렸다는 생각은 않지만, 신체 건강의 중요성 자체는 이견이 있을 수 없고 특히 나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에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오십 줄에 접어들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2016년에 맨 처음 검도를 했다. 평소 검도에 대해 특별한 호감이 있어서 입문했는데, 4개월 하고 접었다. 운동이 너무 힘들었던 탓도 있지만, 관장이 수시로 술자리를 만들어 불러대는 것이 싫어서 발길을 끊었다. 검도 하는 사람의 정신세계는 다를 줄 알았는데 환상이 깨지니 운동도 하기 싫어진 것이다.

 

그 뒤 동네 헬쓰장에 나가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기를 했다. 한 2년을 열심히 했는데 아뿔싸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내가 늙었다는 각성이 찾아든 순간이었다.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대신 걷기만 하니 너무 지겨웠다. 그래서 새로운 운동으로 뭐가 좋을까 궁리 끝에 생각한 것이 골프였다.

 

사실 골프는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생태주의를 신봉하는 나의 정체성을 거스르는 점에서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여전히 이 딜레마를 안고 있지만, 골프는 나이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라 생각한다.

 

골프를 시작한지 2년 조금 못 되는데 코로나 때문에 중간 중간에 몇 개월을 쉬었다. 많은 망설임 끝에 시작한 운동이지만 골프는 내게 딱 맞는 운동이다. 성격상 나는 무엇에 흥미를 품으면 미친 듯이 파고드는 편이다. 어릴 때 구슬치기, 야구, 농구, 대학시절에는 당구에 빠져들 듯이 지금 골프에 빠져있다. 골프 속에는 소시적에 내가 즐겼던 구슬치기, 야구, 농구, 당구의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지 나는 이 운동이 너무 좋다.

 

 

온라인 수업일에 8시30분부터 ZOOM으로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준다. 요즘 보는 영화가 [명견 래쉬]인데, 래쉬는 스코틀랜드 종(콜리)이기 때문에 영화 속에 자주 스코틀랜드의 자연 배경이 펼쳐진다. 놀랍게도 거기는 우리와 지형이 너무 달랐다.(사진1) 편평한 땅에 푸른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10여 년 동안 해마다 이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보는데 유독 올해 이 장면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왜일까? 골프 때문이다. 사람의 인식은 앎의 지평에 비례해서 작동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는 자연환경이 골프에 최적화되어 이루어져 있다. 투박하게 말해,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그냥 아무 곳에나 공 올려놓고 골프를 쳐도 될 정도다. 그러나,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인 우리나라에서는 골프장을 짓기 위해서는 자연 훼손이 심각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골프장은 더 이상 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골프는 사랑하지만 골프장을 짓는다면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반대 운동을 펼칠 것이다.

 

 

 

골프가 나와 딱 맞는 운동인 것은 정적인 운동이기 때문일 것 같다. 필드가 아니라 좁은 연습장에서 벽을 향해 쳐도 일정한 쾌감을 느낀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제대로 공이 맞았을 때 호쾌한 소리와 함께 클럽(골프채) 손잡이에서 느껴지는 손맛에 전율한다. 매일 실내연습장에서 치다가 탁 트인 야외연습장(indoor)에서 칠 때는 더욱 신난다. (사진을 찍으면서 ‘바닥에 떨어진 저 많은 공을 누가 다 줍나?’ 하는 생각도 했다.)

 

골프 입문자가 처음 필드에 나가는 것을 ‘머리 올린다’고 표현한다. 보통 1년은 지난 뒤에 머리 올리러 가지만 나는 3개월 만에 필드에 나갔다. 그것도 일본 오사카에서. 그 뒤 국내에서도 딱 한 번 밖에 안 가봤으니 두 번 나간 것이 전부다. 생태문제에 대한 자격지심도 있지만 무엇보다 돈이 비싸서 필드에는 자주 못 나간다. 코로나 이후 지금 골프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골프피가 40% 인상되었는데도 자리가 없어 예약을 못한다고 한다.

 

오사카에서 난생 처음으로 골프장에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1번 홀에서 첫타를 칠 때 호쾌하게 날아가는 공을 보며 ‘자유’라는 낱말을 연상했다. 내가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는 시적 상상을 했다.

 

참고로, 일본은 다른 물가는 다 우리보다 비싼데 골프피는 절반 정도로 싸다. 인구수 대비 골프장 수가 우리의 3배나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건강한 사회임을 방증한다. 흥미있는 것은 골프장이 많아서인지 일본에는 스크린골프장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동네마다 스크린골프장이 넘쳐난다. 스크린골프는 환경문제로부터 자유로우니 얼마든지 골프를 즐겨도 된다.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닌다. 이 좋은 운동에도 추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걸 내기와 연결 짓는 것이 문제다. 바둑과 당구도 그러하지만 특히 골프에서 돈 따먹기를 즐기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도박이 아니라 그저 흥미와 집중력을 자극하기 위해서라 하지만, 인간 심리가 단돈 천원이든 만원이든 잃으면 열 받고 따면 경박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추태는 이 격조 높은 스포츠를 욕되게 하는바 진정한 골퍼는 이런 퇴행적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무엇에 빠져드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골프에서 도(道)를 발견한다. 변증법과 교육이론을 발견한다. 환경론자로서 내가 골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일종의 커밍아웃이다. 오랜 망설임 끝에 골프 이야기를 여는 것은 이를 통해 내 본업인 교육 이야기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원천은 삶 자체다. 내가 오래 머무는 시간과 장소에서는 뭐든 할 이야기가 쏟아지는 법이다.

 

 

정리하면, 골프는 특히 나이든 사람에게 정말 좋은 운동이다. 나는 골프에서 어린 시절 품었던 짜릿한 유희와 자유 그리고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이 훌륭한 스포츠 이면에 있는 어두운 면을 생각해야 한다. 스크린골프는 즐기되 골프장 건설은 반대하자. 그리고 내기 골프 문화를 멀리하자.

건강한 신체에는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어려울 수도 있다.

 

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