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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육실천

리틀윙 2021. 6. 17. 15:44

해마다 이맘 때 진단평가를 치릅니다. 시험은 치르는 학생도 힘들지만 전체 학생의 시험지를 채점하고 성적을 내야하는 교사도 힘듭니다. 하지만 30년 넘게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일머리가 생겨납니다. 일머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단추를 잘 꿰는 겁니다. 이 일에서는 출석번호 순으로 시험지를 걷는 일이 그것입니다. 번호 순으로 걷으면 채점 결과를 일람표에 옮겨 적기도 쉬울 뿐더러 이름을 적지 않은 시험지의 소재 파악이 쉽습니다.

 

채점하는 일은 전적으로 교사의 몫이지만 시험지를 걷는 일은 아이들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전체 아이들이 번호 순서대로 일사불란하게 척척 움직여주면 좋지만 자기 차례에 제 때 나오지 않거나 시험지의 앞뒤 또는 위아래 면을 거꾸로 들고 와서 일을 성가시게 만드는 아이가 생겨납니다. 특히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는 같은 오류를 거듭 반복하며 교사의 화를 부추깁니다. 인내심에 한계가 다다른 어느 지점에서 교사는 아이에게 공격 기제를 발동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잘 하는데 너는 왜 맨날 그 모양이냐?”고 말이죠.

 

부끄럽게도 최근까지 제 교실의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취할 방향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이의 작은 실수를 너그럽게 포용하는 겁니다. 아이의 행위를 실수로 보지 않고 하나의 성향으로 바라보면 좋을 일입니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이 급하고 인내심이 부족한 제겐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나는 공동체 생활에서 자신의 태만 또는 무심함으로 집단에 거듭 폐를 끼치는 반사회적 행태는 개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대개 이런 아이들은 다른 상황에서도 유사한 행동양식을 보이곤 합니다. 때문에 나의 입장이 설득력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사사로운 화풀이가 아닌 아이의 행동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적 입장이어야 합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사는 정공법 보다는 우회적인 전략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사가 직접 아이 행동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또래 집단의 힘으로 아이를 공동체의 써클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총 아홉 장의 시험지를 빨리 걷기 위해 “자, 지금부터 선생님이 1번 친구부터 번호를 부를 거야. 자기 차례가 되면 빨리 나와야 해. 모두 잘 할 수 있겠지?” 하며 팀워크를 채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초3 아이들은 대부분 흥미를 보이며 재바르게 몸을 움직입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계속 비협력적인 태도를 보이며 힘 빠지게 했습니다. 이럴 때 특정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다음과 같이 피드백을 주는 게 좋습니다.

 

“대부분 잘 하고 있는데 몇몇 친구들이 아직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구나. 그 친구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선생님이 지금부터는 초시계로 기록을 잴 거예요. 모든 시험지가 1분 30초 안에 걷어진다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고수’ 인정 드릴게요.”

 

나의 예상대로 아이의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첫 날부터 교사의 눈 밖에 벗어나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아이였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학습준비물 따위를 잘 챙겨 오지 않는 걸로 봐서 가정 배경이 순탄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말하자면 ‘일탈의 만성화’가 진행되어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나의 힘으로 물리적인 장악은 가능할지언정 정신적인 교화를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리적인 장악은 교사를 위한 것이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장악은 교육이 아닌 지배인 점에서 교사도 아이도 같이 망가지는 파멸의 길입니다. 이런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집단의 힘을 이용해야 합니다. 교사의 지적질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도 또래가 염원하는 집단적 가치로서의 ‘공동선’을 좇는 일에는 마음을 냅니다.

 

이 날 나의 교육실천은 몇 가지 면에서 의의가 있었다고 자평해 봅니다.

 

첫째, 예전 같으면 권위주의를 발동하여 아이에게 상처를 가했을 텐데 평화적인 전략을 구사하며 문제를 해결한 점에서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사람이 타고난 성정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품이 부족해도 머리를 쓰며 적절한 전략 구사를 고민하는 교사는 아이들을 덜 미워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마도 지금까지 스스로 집단을 왕따 시키며 한 마리의 외로운 늑대의 길을 걸어온 아이의 내면에 ‘공동체 의식’이 자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교사의 사랑과 관심에 목말라 하는 아이여서 내 역할이 중요하다는 자성을 하게 됩니다.

 

셋째, 2학년 때까지 교실공동체의 주변부를 맴돌며 반 아이들도 이 아이를 투명인간 취급했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유사한 경험을 통해 이 아이가 집단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또래집단 또한 ‘더불어 삶’의 중요성을 깨우쳐 가는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건강한 자에겐 의원이 필요 없나니......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