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뜻밖의 편지

리틀윙 2021. 6. 17. 16:03

‘스승의 날’을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어제 재작년에 가르쳤던 아이로부터 편지를 전달받으면서 알았다.

 

2019년에 이 학교에 부임해와서 3년째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데 첫해의 아이들이 무척 힘들었다.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말썽꾸러기들이었고 여자 아이들 중에도 성격이 거칠고 공격적인 아이들이 많아서 단 하루도 사건 사고가 그칠 날이 없었다.

 

그때 아이 가운데 두 여학생이 편지를 전하러 우리 교실에 들렀다. 실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아이다. 하나는 그 혼란스러운 집단 내에서 가장 반듯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이고 다른 하나는 내 교직생애에서 가장 “무질서한” 아이다. 앞의 아이가 편지를 주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울 바 없지만, 뒤의 아이는 정말 뜻밖이었다.

 

 

기초학습 능력이 바닥에 있어 공부 시간에 매일 엎드려 잤고, 그나마 그렇게 하는 것이 교사와 다른 또래 아이들을 도와주는 길이라 생각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덩치는 조그마한 녀석이 힘은 얼마나 세고 또 성격은 얼마나 드센지 반에서 남자든 여자든 아무도 이 아이를 당해내지 못했고 나 역시도 그러했다. 한마디로 ‘언터처블’이란 표현이 딱 맞는 여자 아이였다. 자기 자리 주변을 어지럽게 해놓은 한 장의 사진이 이 아이의 독특한 지적-정서적 발달수준이나 야생적인 성격을 그대로 대변해준다.

 

 

그런 아이로부터 편지를 받았으니 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가?

작은 쪽지에 단 두 문장을 적었는데, 앞의 한 문장은 맞춤법이 완벽하다! 두 번째 문장은 웃음이 나오지만 나름 심오한 생각을 표현한 점에서 형식(맞춤법)보다 내용(생각) 면에서 그 깊이에 감탄을 하게 된다. “하나의 낱말은 인간 의식의 소우주”라는 비고츠키의 명제에 비추어, 이 아이의 정신세계에 ‘존경’이란 낱말의미(word meaning)가 자리한 것이 놀라울 뿐더러 나를 그런 대상으로 품고 있다는 사실에 울컥해지기까지 한다.

 

누가 말했던가? 성장하지 않는 나무는 없다고.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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