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리틀윙 2021. 1. 27. 11:11

1988년에 교단에 선 뒤로 지금까지 총 9개의 학교에서 근무해오고 있는데, 두 번째 학교에서 부터 지금까지 줄곧 밴드부를 결성하여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왔다. 그때가 1994년이었다. 그 시절에는 학교 예산이 빈곤해서 밴드 악기를 사달라고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드럼, 일렉기타 따위의 악기는 내가 다른 학교로 전근 가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요청할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그룹사운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악기와 장비를 내 사비로 구입한 뒤, 다른 학교로 이동하면 들고 가서 가르치곤 했다.

 

또한, 그 시절 교사들은 학생지도와 관련하여 월급 외에 따로 받는 것이 전혀 없었다. 중등과 달리 초등에는 ‘보충수업’ 따위의 개념이 없으니 이를테면 방과후에 글자 모르는 아이를 지도할 때 아무런 물질적 보상 없이, 말하자면 재능기부를 했다. 따라서 그 시절에 내가 방과후에 밴드 음악을 지도하는 것도 당연히 무보수로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뒤로 2000년대 후반부터는 방과후에 학생지도를 하는 교사에게 지도수당을 지급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얼떨결에(?) 강사료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든 처음에 학습된 관념이 평생을 가는 법이어서 나는 지금까지도 보수 외에 강사료를 받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서 줄곧 가는 곳마다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300만원까지 학교발전기금으로 기부하곤 했다.

 

어느 해 D학교에 부임해 가서 밴드부를 결성할 때는 예산이 너무 부족하여 최소한의 음악 장비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그래서 행정실장에게 “내 강사비로 책정된 예산을 악기구입비로 조정해달라”고 요청하여 악기를 구입했다(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밴드음악 교육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악기가 사장될 일은 없다).

 

지금 이 학교에서는 토요일에 따로 출근하여 지도하니 강사료를 받아도 어떤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안 느낀다. 그래도 올해 이 학교에서도 학교발전기금으로 100만원을 냈다. 그랬더니, 교장선생님께서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신다. 그리고 다음 날 교무부장님께서 전체 선생님들께 이 사실을 메시지로 알리셨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저께는 또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교장선생님께서 위원들에게 이 사실을 (익명으로) 알리시고 박수를 이끌어냈다는 말을 행정실장이 내게 귀띔해주셨다.

 

전체 선생님들께 알려지는 것은 내가 전혀 바라지 않았던 바이고 학운위에 알려지는 것은 내가 의도했던 바이다. 고참 교사의 소박한 헌신으로 학부모들로부터 학교에 대한 신뢰 형성에 기여하는 것은 전체 교사들에게도 유익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D학교에서의 나의 실천에 대한 반성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지금까지 설을 길게 늘어놓았다^^)

학교예산에서 밴드부 지도 수당 항목을 악기 구입 항목으로 돌릴 게 아니라, 수당은 수당대로 받고 그 금액만큼의 돈(200만원 가까이 된다)을 발전기금으로 먼저 낸 뒤에 밴드부 악기 구입에 쓰게 했어야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D학교에서 내가 실천한 방식이 더 맞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에서 나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첫째,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 같은 범인이 실행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현실성이 희박하다. 나 역시도 자신의 선행을 동네방네 떠벌이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소박한 수준의 인정욕구를 품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조직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소수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일정한 위력을 지닌다. 적지 않은 돈을 학생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 사람은 집단 내에서 말빨도 서기 마련이다. 물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 말빨을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처세술이지 선행이 아니다.

 

둘째, 발전기금으로 내면 연말정산에 짭짤한 혜택을 본다. 소득에 따라 다르지만 100만원에 15% 정도 환급되니 적잖은 금액이다.

 

셋째,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 정도는 알게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명분은,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선행도 악행도 전파된다.

 

사실, 낼까 말까 갈등하던 차에 과감하게 지르게 된 데에는 내가 신뢰하는 한 후배 교장의 비범한 선행에 자극을 받은 탓이 크다. 얼마 전에 이 후배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우물 건설 기금으로 천만 원을 기부한 뒤 굿네이버스인터내셔널에서 발급한 영수증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친구 또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진 않았다. 왼손이 알게 한 것이 결과적으로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 친구도 이런 의도로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내 자랑할 의도는 1도 없었다. 오히려, 누구는 천만 원을 내는데 꼴랑 백만 원 내놓고서 이렇게 생색을 내는 것 같아 남세스러울 따름이다. 교장 샘에게 칭찬 받고 기분 좋아한 것이나 ‘낼까 말까 망설이다가’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내 민낯을 드러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 부끄러운 일상을 노출하는 것은, 내가 후배에게 영향을 받았듯이 누군가가 내 글에 선한 자극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자.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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