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실존적 자극

리틀윙 2021. 1. 27. 10:24

아침에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희동이가 교실문을 살포시 열고 들어와서 발열체크 요청을 한다. 엇! “이 시간에 네가 웬일이니?” 희동이는 지각을 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어제 수학 학습지 숙제를 학교에 두고 와서 아침에 일찍 와서 하려고요!

 

 

너무 좋다.

올해 아이들은 대부분 모든 면에서 양호한 편이지만 코로나 체제 하에서 학교나 가정에 뭘 두고 그냥 오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등교일과 가정학습일이 수시로 바뀌니 아이들이 잘 챙기질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습지를 학교에서 안 가져가는 바람에 숙제를 못했어요”라는 아이들이 많이 생겨난다. 몇몇은 상습적으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바 수시로 일장훈시를 하곤 한다. 어릴 때 생활습관의 중요성 운운하면서 말이다.

 

희동이의 이 반듯한 모습을 보면서 문득 어떤 영감이 스쳐지나갔다. 이 아이의 바람직한 사례를 “학습지를 안 챙겨서 숙제 못했다”는 변명을 일삼는 아이들의 행동 개선을 위한 “매개체”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동이는 “설령 학습지를 안 챙기더라도 자신이 숙제 할 의지가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건설적인 대안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모델이 된 것이다.

 

비고츠키의 영향을 받아 내가 ‘매개(mediation)’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비고츠키 개념으로 ‘매개’는 ‘가르침’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발달단계상 초3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거늘, 초3은 잘못 형성된 생활습관을 고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에 해당한다. 그런데 아이의 행동 수정을 위해 우리 교사들은 “너는 왜 행동이 늘 그 모양이냐?”는 식의 훈육을 가하는 한편, 도덕 수업 시간에는 습관의 중요성으로 훌륭한 인물의 삶을 모범으로 들어 가르치곤 한다.

 

이런 것은 별 교육적 효과가 없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또래다. 아이들 입장에서 훌륭한 인물은 낙락장송처럼 ‘오르지 못할 나무’로만 다가갈 뿐이다. 이런 관념적 롤모델은 자극의 강도가 약하다. 반면, 나와 비슷한 아이가 어떤 대단한 일을 해냈을 때는 매우 각별한 “실존적 자극”을 받는다.

 

요즘 우리 반 남자 아이들 사이에 ‘드럼 신드롬’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이치로 설명이 된다. 내게서 드럼을 배운 한 아이는 음악 능력이 그리 뛰어난 아이가 아니다. 처음에 기타 반에 들었다가 기타가 너무 어려워 그 대안으로 드럼을 배운 것이다. 내가 말하는 “또래 아이의 매개적 효과”가 가장 큰 경우도 이런 것이다. 아주 뛰어난 아이, 낙락장송 같은 아이는 또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지 못한다. 평범한 아이가 앞으로 치고 나갔을 때 다른 아이들이 그 뒤를 따른다. 나와 비슷한 쟤가 하니 나도 못할 게 없다는 강력한 성취욕을 품는다. 바람직한 무엇에 대한 교사의 설교 100마디보다 또래 아이의 실물적인 성취가 아이들에겐 강력한 “실존적 자극”이 되는 것이다.

 

현명한 교사는 아이들 삶 속에서 교육과정을 구성해내야 한다. 이 ‘삶중심교육과정(life-centered curriculum)’은 학년 초에 미리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에 포착해내는 것이기에 교사의 식견과 안목이 요구된다. 내 경우는 교직생활 33년 만에 비로소 이런 지혜가 약간씩 생겨나고 있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교사도 연륜이 쌓일 때 성숙해진다.

 

10.27.

'교실살이-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0) 2021.01.27
교육적 만남  (0) 2021.01.27
사랑스러운 아이들  (0) 2020.08.02
등교 수업  (0) 2020.08.02
오래 만나고 싶은 아이들  (0) 2020.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