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등교 수업

리틀윙 2020. 8. 2. 01:14

 

 

3월1일이 학년도 시작인데 거의 100일 만에 등교개학을 했다. 이 시점에서 교사는 두 마음이 교차하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아이들이 반가운 한편, 숨 가쁜 나날이 펼쳐지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건강검진 때 팔을 내밀고 피 뽑기 전에는 두렵지만 막상 주사바늘이 들어오고 나면 아무렇지 않듯이 교육일상은 시작되고 나면 원활히 돌아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수업이다. 책상을 최대한 띄어놓고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니 여간 힘들지 않다. 더구나 여름의 문턱에 접어들어 날씨는 더운데 10분만 떠들면 숨도 차고 얼굴에 식은땀이 흐른다. 마스크 벗고 땀을 닦으려 하면 “매뉴얼”이 떠올라 망설이고 아이들 눈치를 보게 된다.

 

코로나 상황에서 수업이 힘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둠활동을 할 수 없어 교사 혼자 떠들어야 하고 그것도 마스크를 쓴 상태로 강의식 수업을 하니 체력 소모가 엄청난 것이다. 교사 혼자만 힘들면 문제가 적은데,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니 수업이 지겨울 수밖에 없고 따라서 교사의 강의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교사가 가장 힘 빠지는 지점이 이것이다. 안 그래도 힘든데 아이들이 빨려오지 않으니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애로가 더 벅찬 것이다.

 

교육은 관계다!

존재론적으로, 수업은 교사의 교수활동과 학생의 학습활동이라는 나란한 두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다. 그런데 이 중 한 바퀴가 원활하게 구르지 못하면 수레가 수레로서 기능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책상을 떨어뜨려 학생들끼리 소통을 못하게 하고서 수업을 하라는 것은 “교육적으로” 말도 안 되는 코미디일 뿐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교육은 수업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끼리 부대끼면서 더 큰 배움과 성장이 일어난다. 새 학년도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는 새로 만난 아이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며 관계를 맺어가는 것인데, 초등학생들에게 이러한 사회적 소통은 신체 접촉을 배제한 상태에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거늘, 도대체 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추상같은 매뉴얼은 교육이 성립하기 위한 절대 조건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리는 괴물이다.

 

해마다 이 시기에 3학년 아이들에게 가장 경이로운 배움은 배추흰나비 관찰이다. 그런데 매뉴얼을 준수하면서 교실 창가에 설치해둔 배추흰나비 관찰은 불가능하다. 갈등 끝에 매뉴얼보다는 선량한 교육자적 양심을 준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와! 이파리 밑에 알 있다.” “어디? 정말이네!” 하며 인식론적 희열을 한껏 충족시켜갈 때 내 자리에서 슬쩍 몸을 빼 화장실을 가거나 학년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교육을 위한 보건이지, 보건을 위한 교육은 아니다.

학교교육의 목표가 “코로나 안 걸리기”일 수 없다. 이게 목표라면 등교를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학교에 오게 해놓고서 아이들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게 하는 것은, 수영장에는 들어가되 몸에 물을 적시지 말라는 것과도 같다.

 

아이들 건강이 우선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교육이 보건에 압도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 건강을 위한 과도한 매뉴얼 적용은 교문 앞까지만 해야 한다. 학교 건물에 들어온 상태에서는 현실적으로 마스크 착용과 개인위생 유지 외의 이런저런 지침은 무의미하다. 좁은 교실에서 사회적 거리는 원천적으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매뉴얼 대로 작동될 수 없음에도 쉬는 시간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면 코로나도 못 막을 뿐더러 아이들 정신건강 마저 손상될 판이다.

 

교육청이나 보건 담당자의 입장에서 엄격한 수칙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일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매뉴얼 준수와 교육적 입장 사이에 심각한 괴리를 느낀다는 말을 하고자 했다.

 

어쨌거나 모처럼 아이들로 북적대니 학교가 제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서 좋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별 문제가 생겨나지 않아 지금 이대로 쭉 가길 바란다.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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