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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

리틀윙 2021. 6. 17. 15:33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교사가 있다. 돈 벌러 학교 오는 사람과 돈만 벌러 오는 사람.

 

인류 구원의 사명을 띤 독수리5형제가 아닌 이상, 교사든 회사원이든 직업생활을 영위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생계유지를 위한 소득 확보, 즉 ‘돈벌이’다. 시쳇말로, “모든 게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 삶은 먹고 사는 게 전부일 수는 없다. 먹고 사는 게 전부인 삶과 먹고 사는 것 외의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삶, 이 둘 사이에서 동물과 인간의 삶이 구별되리라.

 

교육의 질은 교사의 자질을 능가할 수 없다. 나는 ‘교사의 자질’이란 의미를 “자기보존 외에 교육적 대의를 영혼에 품고 학생의 성장과 사회발전을 위해 최소한의 헌신을 하려는 의지”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의지를 지닌 교사를 ‘참교사’ 혹은 '혁신교사', 자기보존과 안락을 좇는 교사를 ‘보통교사’라 일컫자.

 

유념할 것은, 이러한 이분법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혁신과 자기보존의 추구는 상대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후자의 욕구는 인간이면 누구나 품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자를 추구하는 교사를 ‘속물’로 치부하지 않고 ‘보통 교사’라 일컬은 것도 그런 뜻이다. 명심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한 가지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인데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기로 한다.

 

현실을 직시하자. 이 치열한 생존경쟁사회 자체가 유래 없을 속세다. 속된 세상에서 속물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젊은 시절 라때의 교사들은 승진에 미쳐 있었는데 요즘 교사들 사이엔 재테크에 몰두하는 것이 유행이라 한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절망했지만 최근 혁신학교 강의 다니면서 만난 혁신교사들을 보면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며칠 전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글을 쓴 것도 이런 맥락이다. 캄캄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다가가면 의외로 괜찮은 이웃들이 있다. 생각보다 많다!

 

승진 욕망과 재테크 붐이 교사집단에 불선한 영향을 미치듯이 참교사의 신선한 열정과 선량한 교육적 마인드 또한 교단에 확산된다. 우리 시대에 “혁신학교”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혁신학교는 학생과 교사 둘 다의 행복과 성장을 꾀한다. 이 둘은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루어지며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중요하다. 교사의 성장이 이루어지면 학생 성장과 학교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에 비추어, 혁신학교운동은 교육운동의 성격을 띤다고 하겠다.

 

혁신학교 연수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6학급의 소규모 학교에서 혁신교사들이 의기투합하여 학교를 혁신해가고 있었는데 1월에 행정실장이 새로 부임해왔다. 이 분은 관내에서 이른바 ‘뺀질이’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처음 몇 개월은 듣던 대로 학교혁신에 대한 관심은커녕 자기 일도 제대로 안 하며 교사집단이 한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혁신학교를 일궈가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탈을 일삼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분이 변하기 시작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학교 텃밭을 가꾸는 등 자신이 안 해도 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이분의 놀라운 변화는 구성원 수가 적은 가족적인 교직원공동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집단역학의 마법이 작동한 원동력은 선한 혁신교사들의 헌신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존중에 기초한 따뜻한 연대의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혁신학교는 완성된 역량과 초인적인 헌신 의지를 지닌 소수의 혁신교사가 보통교사를 소외시키고 일당백의 실천을 해가는 “영웅전”이 아니라, 아직 준비되지 않은 동료가 언젠가 마음을 낼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다려주고 조심스레 다가가서 손잡고 함께 혁신의 길을 한걸음씩 내딛는 “역할극”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속물인 사람은 없다. 사람은 선한 환경에 놓이면 누구나 속물근성을 탈피하고 혁신적인 삶을 살아간다. 모든 속물적인 사람이 다 개선의 여지가 있으니 사람을 믿으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게는 못한다. 사람은 자기 인품의 그릇만큼 이웃을 포용할 수 있다. 다만, 혁신학교를 꾸려가는 교사가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보통교사’와 함께 하지 않고서는 학교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숭고한 가치도 사람을 포기하고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