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교육적으로 장악하기

리틀윙 2018. 7. 12. 13:18

오늘 처음으로 반항하는 한 녀석과 맞닥뜨렸다.

첫날부터 계속 심기를 어지럽히던 전형적인 주의산만 형 꼴통인데, 영어수업 시간에 내게 딱 걸렸다. 명백히 자기가 잘못한 상황인데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뒤틀린 심사에 내가 내준 알파벳 쓰기 과업도 이행하지 않으며 흡사 나는 선생 당신 말 안 듣겠소.’ 라는 식의 저항 자세를 보이는 것이었다.

 

반 전체 아이들이 교실 내에 비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감지하여 숨죽이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크게 혼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조용히 아이를 복도로 불러냈다. 다른 아이들은 과업 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분히 나 메시지 I-message’ 기법으로 아이를 타일렀다. 이런 상황에서 의표를 찌르는 교사의 태도에 웬만한 아이들은 다 넘어오게 되어 있다.

 

이러한 대치국면에서 아이가 품는 심사는 교사에게 크게 혼나는 것보다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나쁘게 말해 싸가지가 없는 놈이지만, 좋게 보면 기질이 있는 아이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교실이라는 공적인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아이나 교사 둘 다 대중의 시선이 불편한 것이다. 교사 입장에선 아이들 보는 데서 권위를 지키기 위해 아이를 진압해야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자존감을 보존하기 위해 계속 저항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도 화해하는데, 교사가 아이에게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국면에서 긴장 해결을 위한 열쇠는 절대적으로 교사 손에 쥐켜져 있다.

 

몇 분 뒤 웃으면서 각자의 자리로 귀환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아이를 남겨서 후속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아이에게서 진심으로 뉘우치는 회개의 변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도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 선생님이 조금 과한 것도 있었다. 네가 화난 이유를 나는 안다. 하지만.... 어쩌구 저쩌구...

 

..............

 

예전 같으면 절대 그냥 안 넘어갔다.

사실, 오늘도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참았다. 이성적으로 아이 행동의 인과관계라든가 나의 거친 행동이 야기할 이런 저런 비교육적인 결과들이 눈에 보였다.

 

화를 내면 지는 것이라 한다. 다른 누구보다 교사에게 이 말은 절대적으로 옳다. 교사가 자기 분을 못 참고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아이에게 지는 것이고 자신에게 지는 것이다. 교육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이이고 교사는 교사다.

사실, 대치국면에서 교사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교사가 아이를 대등한 상대로 격상(?)시켜주는, 아니 자신을 아이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교사가 아이와 똑같아져서는 안 된다. 아이와의 갈등 상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해가는 열쇠는 오직 교사에게 달려 있다.

 

화를 내면 지는 것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추스르고, 교육적으로 아이를 장악해야 한다.

교육적으로 아이를 장악하기. 방금 생각해낸 괜찮은 아이디어이다. 방점은 장악이 아니라, ‘교육적에 있다. 교육적으로 장악하기는 흔히 감화라고 일컫는 그것이다.

 

2018.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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