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1

친목회장

리틀윙 2018. 7. 12. 13:23

친목회장을 맡았다.

작년 회장은 2년 연속으로 해서 올해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 하는데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한다. 회의장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적막을 깨고 교무부장이 나를 추대하고 연구부장이 재청했다. 두 분은 2월말부터 내게 제안을 했던 터였다. 승진 욕심도 없이 학교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두 후배교사가 부탁하니 고사하기가 어려웠다. , 친목회장 역할은 연륜이 있는 사람이 맡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학교마다 친목회장 자리는 모두가 기피하는데 친목회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학교사회에서 빚어지는 납득하기 힘든 아이러니 중의 하나다. 이 또한 질곡의 승진제도와 관계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문제는 기형적인 승진제도에서 파생된다.

 

친목회 자체가 문제일 순 없다. 과도한 친목활동이 문제다. 전입 교사 환영회는 꼭 필요한 행사지만, 23차 노래방 등으로 뻗치는 게 문제다. 노래방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가기 싫은 사람 억지로 끌고 가는 게 문제다. 거기엔 늘 인화단결의 명분이 붙는다. 어린이집에서 엄마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아이가 눈에 밟혀 도망가는(?) 여교사는 인화단결을 해치는 불순분자가 된다. 인화단결을 강요하는 쪽과 강요당하는 쪽 사이엔 위계질서의 관계망이 드리워져 있다. 집단 내에서 인화단결이라는 가치어는 언제나 권력자의 입에서 나온다. 때문에 이것은 일종의 파시즘이다.

 

친목회 행사의 꽃은 직원여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작년에 우리학교에선 직원여행에 참여한 친목회원이 반 정도밖에 안 되었다. 3월부터 여행을 위한 적립금을 부어 10만 원쯤 되는 거금을 포기하면서 여행을 안 간(혹은 못 간) 사람이 절반이 된다는 사실은 친목회장의 입장에서 직원여행의 존속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어제 친목회칙 심의 때도 어떤 회원이 그 문제를 슬쩍 제안했다. 맨 앞줄에 계신 교장선생님께선 거수로 회원들의 의사를 묻자고 하셨지만, (싸가지 없이) 내가 묵살했다. 학교장이 그렇게 제안하는데, 누가 위계질서 내 최고존엄의 의지에 반하는 표결을 거수로 하겠는가?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파시즘이다.

 

울 학교 교장선생님은 그래도 후덕한 성품에 교사들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시는 분이다. 친목회에서 교장은 회원의 일인에 불과하건만, 대개 교장은 친목회에서도 교장질을 하려 한다. 교장의 이런 횡포를 막기 위해서라도 친목회장은 연륜이 있는 교사가 맡는 게 바람직하다. 사실, 친목회를 이끄는 사람 입장에서 제일 피곤한 게 친목회의 모든 문제를 관리자의 의사나 형편에 맞춰 결정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친목회 일을 가급적 교장선생님과 먼저 조율한 뒤에 추진하려 한다. 그러나, 많은 회원들의 뜻이 교장선생님과 다를 때는 불가피하게 교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나의 마땅한 소임이라 생각해서...... 직원여행 존속여부 문제는 다음 주에 온라인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친목회의 파시즘과 나쁜 승진제도와 무슨 관계가 있나 할 것이다.

현행 승진제도 하에서 권력자에 밉보이고 승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승진제도가 파시즘 그 자체인 것이다. 매사에 학교장의 비위를 맞춰주며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아랫사람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으려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독재적인 교장일수록 친목회를 중요시한다. 인화단결이라는 모토를 내세워 학교사회 내 관리자-교사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찍과 함께 당근을 던질 수 있는 경로가 친목회인 것이다. 초등교사들이 배구에 미치는 기제가 이런 것이다.

 

동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물질적으로 상호부조하려는 취지의 친목회 문화는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이다. 또한 인간에게 건강한 유희는 삶의 재충전을 위해 꼭 필요하기도 하고 또 공동체 의식이나 심미적 감성과 연결될 때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권위주의를 동반하여 일사불란한 참여를 종용하는 인화단결은 미덕일 수 없다. 그것은 엄연한 파시즘이고 그것을 강제하는 집단은 식민지다.

 

2018.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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