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2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

리틀윙 2021. 1. 27. 11:35

교사들 사이에 흔히 회자되는 경구로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얼핏, 지당한 말처럼 들린다. 학교에서 행정실 직원이라면 몰라도 교사 가운데 이 말에 반감을 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그 자체로는 진위를 검증할 수 없다.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인 경구는 부조리한 맥락에서 악용될 위험이 있다. ‘교사의 행복’이라는 표현은 너무 모호하다. 교사의 어떤 행복이 학생의 행복과 연관을 맺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논해야 한다. 내가 이 경구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도 현실 속에서 교사의 행복이 학생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학교의 시간 운영이다. 중등은 몰라도 초등학교에서는 시정표를 조밀하게 짜서 수업 끝내고 학생들을 빨리 하교시킬수록 교사가 편해진다. 단위수업 시간은 40분으로 모든 학교가 같지만 중간놀이시간과 점심시간을 몇 분으로 배치할 것인가에 따라 학생의 하루 일과는 적잖은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 차이에 따라 교사 행복과 학생 행복의 명암이 엇갈린다.

 

최근 내가 근무한 3개 학교 가운데 A학교는 중간놀이 시간 30분 점심시간 60분, B학교는 중간놀이 시간 10분 점심시간 60분, C학교는 중간놀이 시간 10분 점심시간 50분이었다. A학교와 C학교 사이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의 차이가 무려 30분이나 된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밥이고 자유다. 아이들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놀이에 허기진 대가로 교사는 오후에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갖는다. 물론 교사는 노는 게 아니라 업무처리를 하고 교재연구를 하며 생산적인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어쨌거나 교사의 자유와 아이의 자유 사이에는 ‘제로섬게임’이라는 방정식이 작동한다.

 

이러한 사례 외에도 학교에서 기획하는 대부분의 사업이나 행사가 교사 행복과 학생 행복이 상충되는 것들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학교 행사가 적을수록 편하지만 학생의 입장은 그 반대다. 현장학습의 예를 들면, A학교에서는 너무 자주 나가서 힘이 들었지만 B학교에서는 1년에 단 한 번을 배치하여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어릴 적 학교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1년에 두 차례 있는 소풍인데 그걸 절반으로 줄인 것은 교사의 행복을 위해 학생의 행복을 밀어낸 듯한 씁쓸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기존 교사집단이 설정해 놓은 지침을 전입 교사 입장에서 왈가왈부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 기저에는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는 명제가 절대원칙으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사의 행복이 학생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교사 복지가 열악하거나 관리자의 갑질이 심해 교사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면 학생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 역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교사의 행복은 학생의 성장을 위해 중요한 조건이다.

 

정리하면,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는 말은 어떤 맥락에서 이 말을 쓰는가에 따라 진실일 수도 있고 부조리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후자에 무게중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같은 교사이면서 자조적인 태세로 교사집단을 매도한 것처럼 비쳤다면 유감이다. 그럴 뜻은 없었다. 다만 자정(自淨)의 차원에서 어떤 성찰을 제안하고자 했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억압적이거나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심신이 지쳐있는 교사에게 이 말은 각별한 위로로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을 신봉하면서 혹 학생의 행복이 교사의 행복에 잠식되는 부조리한 국면에서 침묵한 적은 없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피치 못해 침묵하더라도 어떤 불편한 마음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가 누리는 행복은 복지가 아니라 폭력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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