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2

교육적인 것이 인간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교육적이다

리틀윙 2021. 1. 27. 13:30

연말정산 때문에 학교에 갔다. 마침 교장선생님이 계셨다(방학 중에 교사는 학교에 안 나와도 되지만 교장과 교감은 한 사람씩 교대로 근무한다). 연말정산 끝내고 교장실에 들렀다. 집으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오랜 만에 학교에서 만났는데 그냥 사라지는 것이 예의(상하 관계의 예의가 아니라 비슷한 연배의 동료로서의 예의)에도 어긋날 뿐더러, 그간에 어떻게 지냈는지 학교에 별 일은 없는지 궁금한 마음에서 찾았다.

 

 

돌이켜보니, 지금껏 교직생활에서 이렇듯 따뜻한 마음으로 교장실 문을 노크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학교에서는 내가 발령 받아 갈 때 교장실에서 교장과 교감이 머리 맞대고 1시간 동안 대책회의를 열었다 한다. 그 말을 내게 해준 이는 다름 아닌 교감(교장 교감 모두 나의 선배다)이었다. 친목 환영회 마치고 3차까지 갔다가 단 둘이 남았을 때 들었다. 당연히 기분이 안 좋았다. 기분이 안 좋았을 뿐더러 대책회의를 소집한 교장이나 (술이 취했을지언정) 이런 말을 후배 교사한테 내뱉는 교감이라는 사람도 참 한심하다 싶었다.

 

본의 아니게 나라는 사람이 관리자들에게 적잖이 불편한 존재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심사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일 뿐이다. 교사로서 나는 “쓸만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관리자인 사람은 공익을 위해 이런 교사가 학생과 학교 발전을 위해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그게 관리자의 마땅한 소임이다. 그런데 교육적으로 유능한 한 교사를 대책회의 수립 대상으로 보다보니 서로 의기투합할 일이 없다. 나 스스로도 교장실을 찾아 학교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소통을 하고픈 마음이 안 내키는 것이다.

 

내가 교감의 실언 한마디에 삐쳐서 학교장과의 소통을 접은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관리자가 나 같은 사람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서운하게 대접하더라도 학생을 중심에 놓고 교육적으로 진정성 있는 학교 경영을 했더라면 기꺼이 열과 성을 다해 도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다. 이 분은 대책회의 수립 대상인 나를 무슨 시한폭탄 다루듯 극진히(?) 대접하셨다. 반면, 교육적으로는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우리는 피차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지냈다.

 

나는 “사람 좋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이 말은 (어제 글에서 말했듯이) 참으로 추상적인 말이다.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좋은 사람인가 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학교에 있는 사람이 좋으려면 “교육적으로” 좋아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무개 교장이 교육적으로는 아쉽지만 사람은 좋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교육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이 따로 가지 않는다. 교육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적인 것이 교육적인 것이다. 교육적으로 수상한 교장이 나한테 잘 해준다고 해서 인간적으로 그 분에게 호감을 품을 수 없다. 반대로, 어떤 안 좋은 일로 대립 끝에 서로 불화하더라도 교육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교장이라면 인간적으로 호감을 품어야 한다. 다가가서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과거의 불편한 관계를 풀어야 한다. 이런 통 큰 화해를 통해 서로가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 교육 주체들의 관계 회복은 곧 학생 교육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이것은 멋진 삶이다.

 

아름다운 꽃은 향기도 다르듯이, 교육적인 교장은 일상에서 풍기는 정취가 여느 속물적인 교장들과 비교가 된다. 교직 평생을 오직 승진 마일리지 모으기에 여념이 없었던 교장들의 대화 주제는 지성인과 거리가 먼 찌든 삶의 이야기뿐이지만 이분은 어떻게 하면 우리 학교 아이들이 즐겁게 배우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게 할까 하는 고민을 나누시곤 한다. 교장실에서 늘 들으시는 음악도 클래식이다. 내 교직 평생 클래식 듣는 교장은 처음이다.

 

모든 면에서 이분이 좋으신 것은 아니다. 처음에 부임해 오셔서 후배교사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연구점수 딸 준비하라”는 말씀을 하셔서 교사들로부터 빈축을 싸기도 했다. 그런데 이분이 나의 책 [교사가 교사에게]를 읽으신 뒤로는 ‘점수’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이 책을 밑줄 그어가면서 완독하셨다. 지금까지 내게 이 책을 받으시고 끝까지 읽은 교장을 처음 본다.

 

아주 훌륭한 교장선생님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 교장이 이 정도면 정말 괜찮은 분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많은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좋은 교장선생님이라 평하는 몇 분을 만났다. 하지만 교육적으로 좋은 교장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이 교장선생님은 그분들보다 교사들로부터 ‘좋은 교장’이란 평을 듣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괜찮은 교장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최고의 교장선생님이시다. 교육적으로 좋기에 인간적으로도 최고인 분이시다.

 

(사족: 보다시피 나는 이렇게 ‘착한’ 선생인데, 그 교장 교감 선배들은 왜 내가 온다고 대책회의를 여셨을까? 사실 나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사람이다. 따라서 교육적이기도 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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