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살이-2

실천과 깨달음

리틀윙 2021. 1. 27. 11:46

 

교직생애 처음으로 ‘시 쓰기’를 시도해봤다. 해마다 글쓰기 지도는 나름 열심히 했지만 시 쓰기를 공 들여 지도하기는 처음이다. 그 이유는, 글짓기(산문)보다 시 쓰기(운문)가 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했더니 좋은 작품이 마구 쏟아져 나와 깜짝 놀랐다. 그것도 6학년이 아닌 3학년이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평소 산문은 단 한 줄도 못 써 글짓기 과제는 아예 포기하는 ‘쓰기 포비아’ 아이들도 근사한 창작 시를 완성해낸 점이다.

 

애초에 이 과업은 미술수업과 국어수업을 겸하여 ‘시화 그리기’로 목표를 잡았다. 전날 숙제로 자기 시를 지을 사람은 시를 짓고 시 짓기가 부담 되는 사람은 인터넷에서 좋은 시를 검색하여 공책에 적어 온 뒤 미술 시간에 옮겨 쓰고 그림을 완성하게 했다. 그런데 ‘쓰기 포비아’ 친구들이 나의 예상을 뒤엎고 신선한 작품들을 생산해내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인과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은 논리적 사고보다 직관적 사고가 발달해있기 때문이 이런 기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산문 쓰기는 논리성이 요구되지만 시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어른들과 정반대로 아이들에겐 긴 글 쓰기보다 시 쓰기가 더 쉬울 것 같다.

 

그냥 공책에 적을 때보다 도화지에 작품을 만들면서 최선을 다해 예쁜 글씨로 적고 그림까지 덧붙이니 아이들의 창작물이 더욱 빛이 났다. 글짓기에 자신이 없어 하던 아이들에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던 점에서 오랜 만에 좋은 수업을 했다는 생각에 나 역시도 뿌듯함과 희열을 느꼈다.

 

 

‘죽음’을 주제로 쓴 아이는 작품을 완성하고 난 뒤에 무거운 시상이 마음에 걸렸던지 내게 다가와 도화지를 보여주면서 “선생님, 이거 좀 그렇죠? 다시 쓸까요?”라고 묻는다. 나는 “멋진 시”라고 화답해주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사람들의 눈물로 연결 짓고 나아가 인간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궁극적인 슬픔인 죽음의 문제로 끝을 맺는 아이의 깊은 사유가 대견스러웠다. 어린 실존주의 철학자를 보는 듯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평소 이 아이는 글짓기 숙제를 한 번도 해온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산문보다 시 쓰기를 더 어려워한다고 해서 아이들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 것은 지금까지 나의 심각한 오류였다. 나는 실천을 통해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실천은 주체의 땀과 열정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지만, 실천이 정말 중요한 이유로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실천은 관념의 옳고 그름을 증명하는 유일한 경로다.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