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행동주의심리학

리틀윙 2020. 8. 2. 01:13

일반인들에게 ‘행동주의behaviorism’라는 말은 낯선 기표일 수 있지만, 교육학을 공부한 교사들에게는 익숙한 용어다. 교사든 일반 학도들이든 대체로 행동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품고 있는데 이것이 거의 맹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성에 문제의식을 품는다.

 

S-R(자극-반응)로 표상되는 행동주의 이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품는 자체는 정당하다. 복잡 오묘한 인간 존재가 동물과 똑같이 “외부 자극에 그대로 반응한다”는 사고는 팩트를 떠나 어떤 불경(不敬)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행동주의의 오류는 인간을 동물과 같이 취급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본 것에 있다.

 

인간 질병 유전자의 75%가 초파리에게서 관찰된다고 한다. 각종 암은 물론 알츠하이머나 자폐 같은 정신 이상증세도 인간과 초파리가 같은 양상을 보인다. 초파리가 아닌 원숭이에게서 그 싱크로율은 90%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수치가 99%라 하더라도 나머지 1%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이 1%의 차이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서게 한 가능성이다. 행동주의의 오류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이 1%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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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행동주의적 사고보다 더 나쁜 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99%의 동물적 속성을 무시하는 “관념론적” 입장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서구인들의 기존 인식 체계를 강타했을 때 “창조냐 진화냐”를 놓고 토마스 헉슬리와 윌버포스 주교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윌버포스가 헉슬리를 향해 “그럼, 당신은 조부와 조모 가운데 어느 혈통을 통해 원숭이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는가?”라는 인신공격성 질문을 던졌을 때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나의 조상이 원숭이인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훌륭한 재능을 진실을 은폐하는 데 쓰고 있는 한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Huxley is said to have replied that) he would not be ashamed to have a monkey for his ancestor, but he would be ashamed to be connected with a man who used his great gifts to obscure the truth.

(너무 훌륭한 문장이어서 위키피디어의 원문을 인용한다. 토마스 헉슬리의 조부가 원숭이인지는 모르나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의 위대한 문호 올더스 헉슬리의 조부다.)

 

이 유명한 토론은 인류 지성사에서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인간 지성의 획기적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로부터 전근대적인 창조론의 굴레에서 벗어나 과학적 세계관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면서 인류의 정신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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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심리학을 맹목적으로 부정하는 식자층의 경향성에서 윌버포스 주교의 독선과 아집이 연상된다. 나는 행동주의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자체가 역설적으로 행동주의의 조야한 정식 S-R이론에 설득력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행동주의는 무조건 나쁘다는 교조주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교사에게 인사 건네는 아이에게 칭찬을 해주면 인사를 더욱 열심히 하는 아이의 행동, 출근시간에 차 막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나서는 회사원의 행동, 포인트 적립에 유리한 카드 이용 방법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는 행동,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으로 일정한 실리를 거둔 것,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린 자신의 글에 '좋아요'가 얼마나 많이 달릴 것인가 하는 기대심리 등, 거의 모든 우리의 일상생활이 행동주의 이론으로 설명이 된다.

 

학급경영에서 스티커로 상점/벌점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기 때문에 행동주의가 싫다면, 인사 잘 하는 아이에게 ‘칭찬’이라는 강화물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일상의 99%가 행동주의 원리의 적용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데, 행동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이성적인 태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주의의 원리를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바람직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교사인 사람은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형성 이론”에 대해 숙지할 필요가 있다.

침대가 과학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육은 과학이다.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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