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메타인지

리틀윙 2020. 4. 4. 21:15

1988년 교단에 첫 발을 내디딘 뒤로 오랜 기간 동안 어떤 착각에 빠져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나를 신뢰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잘 하니 남자 아이들이 잘 따르고 음악도 잘 하니 여자 아이들도 내게 호감을 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다가 중년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예전과 달리 뭔가 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늙어가는 반면, 아이들은 한 해가 다르게 예전 아이들과는 완전 딴판으로 급속히 변해가는 것이었다.


교사 입장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하며 자기 교직 삶을 반추하게 되는 특별한 시점이 있다. 바로 지금 2월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조금 못 된 어느 해의 2월에 내가 맡은 4학년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오늘처럼 내가 제작한 담임교사 평가 설문지를 돌렸다. 그 중 한 아이의 대답이 충격이었다. “잘난 체 하고... 어쩌구 저쩌구... 재수없다!”는 문구를 접했다.


무기명으로 작성했지만 아이가 내용을 상세하게 적었기 때문에 특정 맥락으로 미루어 누군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괘씸했지만, 설령 아이가 되바라지고 표현이 과도했을지언정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평가를 받는 교사라는 엄정한 사실이 중요했다. 


그 해, 불과 며칠 뒤 (경북 초등계에서 가장 특별한) 다부초에 전입했다. 여기는 전교조 교사들이 환영 받는 ‘참교육의 요람?’이니 그런 불편한 대접을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웬걸? 오히려 찬밥 신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경북에 상주남부초를 필두로 자생적 혁신학교가 몇 군데 있는데, 그런 학교에 중년의 교사들이 처음 가서 나와 비슷한 혼란을 겪는다고 한다. 즉, 평소 스스로를 “일반 교사와 달리 열린 사고를 지닌 괜찮은 교사”로 자부하고 있었는데, 다부초 같은 곳에서는 그런 평가를 못 받는 것이다. 자기 의도와 달리 저평가를 받는 이유 또한 간단하다. 그런 학교의 아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속된 표현으로) “민주화”가 한껏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웬만한 참교육실천으로는 별 감흥을 못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 교사들은 몸과 마음이 자기보다 더 젊기 때문에 아이들 눈에는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박정희-전두환 정권기의 전체주의사회에서 성장한 386들은 아무리 그 암울한 시대정신에 저항하며 살아왔더라도 이미 자기 정신 속에 ‘파시즘’이 깊숙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적과 싸우다 적을 닮는다고, 파쇼 교장들과 투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닮아간다. 이를테면, 교무실에서는 민주투사인 교사가 교실에 와서는 아이들에게 교장과 비슷한 독재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장년의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교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포맷(format)이 필요하다. 기존의 자기 영혼 내에 있는 낡은 무엇을 완전히 청산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것은 물론이다. 다부초에서 4년 지내면서 나는 포맷 까지는 아니지만, 하드웨어에 일정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고 자평해본다.





다부초를 떠나 일반 학교에서 세 해를 지나고 있는데, 줄곧 3학년을 맡았다. 3학년 아이들이 순진해서 그런지 “재수없다”는 식의 과격한 평어는 한 번도 접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과분한 평가를 받아 어리둥절할 정도다. 오늘 받아든 평가서의 내용이 하나같이 “선생님은 착하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 중 한 아이의 다음과 같은 글귀에 지금도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착해도 너무 착하셔서 조금은 착한 것을 줄이고 살짝 엄격하게 하시면 좋겠다.


굉장히 똑똑한 남자 아이인데, 아이가 나를 이 정도로 생각하는지도 오늘 처음 알았다.


이 글 전반부에서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저평가 받는 이유가 “나이”와 관계있다고 했는데, 다부초 이후 일반학교에 근무하면서 내가 드는 확신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교사가 망가지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착각”이다. 반대로 나락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메타인지(성찰)”다. 나이가 들수록 착각은 줄어들고 성찰은 늘어나기 때문에 나이를 먹는 것은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르는 것은 최악이다!


2.11.

'이론과 실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문가 바보  (1) 2020.04.04
모든 것을 의심하라!  (0) 2020.04.04
오개념 바로잡기 : 다수자  (0) 2020.04.04
실천과 이론  (0) 2020.04.04
국어와 한국어  (0) 2020.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