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국어와 한국어

리틀윙 2020. 4. 4. 01:36


어제 대구에 있는 현대사상연구소 세미나에서 배워온 한 가지.


‘국어’라는 표현이 잘 못 됐다는 것. 요즘 대학에서는 ‘국어’ 대신 ‘한국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국어라는 표현은 일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꿔 쓰듯 ‘국어’도 ‘한국어’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본식 조어라는 이유로 그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면 우리는 거의 모든 걸 다 바꿔야 하고 그래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내 방 책꽂이에 꽂힌 책 제목만 해도 그렇다. 세계사, 좌파, 인권, 변증법, 철학, 과학, 현대, 경제, 언어, 본능, 역사, 윤리학, 소외, 구체성, 발달, 전환기, 이론, 계급, 교사 등등. 모르긴 해도 이 표현들은 대체로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국어는 한국어로 바꾸는 게 옳을 것 같다. 

‘국어’라는 표현을 곧이곧대로 영어로 옮기자면 ‘National Language’ 쯤 된다. 영어에 대한 약간의 감각이 있는 분이라면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영어 표현으로는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국어는 영어로 ‘Korean’이다. ‘코리언’을 다시 우리말로 옮기면 ‘한국어’가 된다.


국어나 한국어나 둘 다 ‘나라 국(國)’자가 들어가지만, (국+어)와 (한국+어)는 어감이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국가의 말’ 후자는 ‘한국인의 말’을 뜻한다. 어떤 경우든 ‘국가’를 강조하는 것은 ‘국가주의’ 즉 전체주의를 표상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모든 언어는 정신을 담고 있기에 개인의 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언급한 ‘가미가제’로 상징되는 일본인 특유의 정신은 ‘나라 국(國)’을 강조하는 끊임없는 세뇌의 산물로 봐야 한다.


‘나라 국(國)’ 자를 매개로 한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끝판왕은 국민교육헌장이다.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일본식 이름을 2개씩이나 갖고 있는 박정희는 일본의 명치유신이라는 이름을 본 딴 ‘10월 유신’을 감행한 후 국민교육헌장을 유포했다. 오륙십 대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 뜻도 영문도 모른 채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말을 달달 외웠다. 지금 노쇠한 몸으로 태극기부대에 합류하여 애국의 화신이 된 할배들의 파토스는 이러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교육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인간의 정신을 빚어내기에 ‘국민학교’와 ‘국어’처럼 ‘나라 국(國)’자로 시작하는 명명은 조심스레 사용해야 한다. 일본식이어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일본의 파시즘이 담겨 있어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초중고 교과서도 다 바꿔야 하는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ㅠ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