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나의 글쓰기 방법 1 – 글의 개요를 미리 짜지 않기

리틀윙 2020. 4. 3. 11:13

나는 글쓰기를 좋아할 뿐 전문적인 글쟁이라 할 수 없다. 학창시절 교내 백일장 대회 따위에도 한 번 나가본 적이 없고, 글쓰기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적도 없다. 그래서 나의 글쓰기 방식은 보편적인 글쓰기 원칙을 떠나 순전히 내 나름의 실천을 통해 체득한 것임을 미리 일러둔다. 때문에 나의 관점은 정론을 거스르는 변칙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글이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지금부터 나만의 글쓰기 방법을 말해보겠다.

 

나만의 글쓰기 방법, 그 첫 번째는 글의 개요를 미리 짜지 마라는 것이다.

글쓰기에 관한 기본 상식에 비추어 이 말은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들릴 지도 모른다. 집을 짓기 전에 설계도를 먼저 그리듯이 글을 쓰기 전에 글의 개요를 먼저 짜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이를테면, 논문 작성이나 논술 시험처럼 치밀한 구조화를 요하는 글은 당연히 이렇게 써야 한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글 쓰기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쓰는 글에서는 치밀한 개요의 구성이 오히려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폐단이 있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감정이다. 말이든 글이든 생각이 떠올라야 할 수 있는데,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정서적인 힘이다. 어떤 대상을 향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에너지는 전적으로 감성적인 속성이다. 그런데 필(feeling)이 왔을 때, 글을 바로 써내려가지 않고 설계도를 먼저 작성하다 보면 이 에너지가 식어 버린다. 이것은 흡사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글쓰기의 동력은 감성적인 에너지가 전부인데, 글의 개요 작성은 이성적인 활동이다. 감성과 이성은 함께 가야 하지만, 감성이 이성을 끌어야지 그 반대는 아니다. 말하자면, 감성은 말이고 이성은 수레다. 글 쓰기 전에 글의 개요를 치밀하게 짜는 것은 말 앞에 수레를 놓는 것과도 같다.  

 

글쓰기 원칙에서 개요 작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 없이는 짜임새 있는 글 쓰기가 어렵고 글이 뒤죽박죽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견이 있을 수 없는 명백한 진리다. 나 역시도 이런 오류를 숱하게 범해왔다. 그러면, 최초의 정서적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개요 작성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일관성 있는 글을 쓸 것인가?  

 

상념에 흐르는 생각을 곧바로 글로 쓰더라도 머릿속에서 최소한의 정리는 해야 한다. 비고츠키의 용어로 내적 말inner speech’이라는 것이다. 내적 말은 어린 아이의 혼잣말이 발전한 형태다. , 혼잣말에서 소리가 빠진 것이 내적 말인데, 혼잣말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향해 내뱉는 말이다. 우리는 회의석상에서 발언할 때와 같은 중요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내적 말을 쪽지에 옮겨 적곤 한다. 짜임새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생각의 편린, 즉 내적 말을 키워드 중심으로 메모하면 좋다. 이것은 마인드맵과는 다르다. 앞서 말한 개요 작성의 폐단을 피하기 위해 메모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내적 말을 메모하는 과정조차 경우에 따라서는 생략할 수도 있다. , 이 경우에도 최소한 제목은 정하고 글을 써야 한다. 글쓰기에서 적절한 제목을 뽑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생각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글의 제목 또한 정하기 어렵다. 거꾸로, 제목을 선명하게 뽑았다면 그 글은 이미 절반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  

 

개요 작성 없이 글쓰기에서 제목 정하기가 중요한 결정적인 이유는 제목이 글의 방향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전에 개요를 미리 짜지 않으면,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숲 속에 들어가면 숲을 볼 수 없어 길을 잃기 쉬운 것처럼, 글을 쓰다보면 어떤 한 문장 혹은 단락에 빠져들어 원래 하고자 하는 주제를 놓치고 옆길로 새기 쉽다.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글의 제목을 확인하면서 글의 방향을 잡아가도록 자기검열을 해가야 한다. 밤바다를 항해하는 뱃사람이 북극성을 보며 방향을 잡아가듯이 글 쓰는 사람은 글의 제목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일관성 있는 글을 써 갈 수 있다.  

 

글쓰기에 앞서 개요 짜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사고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확장되고 바뀌어가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비고츠기는 사고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해 완성된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생각을 완전히 정리한 다음 말을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입말이든 글말이든 말을 내뱉으면서 우리의 사고는 더욱 발전해간다. 어떤 주제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글쓰기는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글쓰기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 놀라운 사고력의 확장은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머리에서 나와 눈앞에 드러난 어떤 사고를 디딤돌로 자기 내면의 지적 잠재력을 최대한 확장해갈 수 있다. 이 경우 글의 개요에 의존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설계도를 다시 작성하는 번거로움이 수반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 하겠다.  

 

일본의 어느 학자가 우리의 사고가 머리와 가슴 가운데 어디에서 시작되는지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연구 결과 놀랍게도 우리의 사고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내가 글쓰기의 주된 동력이 이성이 아닌 감성이라고 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라 하겠다.  

 

비고츠키의 난해하고도 방대한 책 [생각과 말]의 끝락에서 이 같은 이치를 절묘하게 설명하고 있다. 비고츠키는 사고를 구름에 비유했다. 구름이 비를 뿌리듯 사고는 말을 쏟아낸다. 중요한 것은 구름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점이다. 구름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이다. 구름이 더 많은 구름과 만나 큰 비를 내릴 것인지 그냥 하늘에 떠있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바람에 달려 있다. 비고츠키는 바람을 동기(motive)에 비유했다. 감정, 흥미, 의지, 성향 등의 정서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동기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이 동력이 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을 받았을 때 곧바로 글을 써내려가야 한다는, 글의 개요를 짜다 보면 그 동력이 떨어지는 폐단이 있다는 말을 하고자 했다.

 

2019.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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