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천

오개념 바로잡기 : 다수자

리틀윙 2020. 4. 4. 20:50

흔히 배움을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을 채워 넣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머리에 들어있는 기존 지식 가운데 잘못 된 것을 고치기, 즉 오개념을 바로잡기가 더 중요한 배움이다.


최근까지 ‘다수자’라는 개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자구 그대로의 의미는 ‘많은 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틀린 해석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이 말은 이런 뜻으로 쓴다. 하지만, 주로 사회학적 맥락에서 쓰는 이 말은 수량의 문제와 무관하다.





다수자의 대립물은 소수자(minority)인데, 이 용어는 나찌에 의한 유대인 대량학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1945)에 루이스 워쓰(Louis Wirth)가 최초로 썼다. 워쓰는 소수자집단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신체적 문화적 특징 탓에 다른 사람들과 구별지어져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내에서 차별과 불평등한 대접을 받으며, 그 결과 스스로를 집단적 차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


소수자집단은 사회학적 개념이지 통계적 개념, 즉 숫자와는 무관하다. 빨강머리나 뉴요커들은 미국 사회 내에서 소수에 해당하지만 소수자집단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들은 수적으로 다수이지만 소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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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상헌 선생님이 성평등 수업 자료로 학생들에게 보여주다가 이를 불편하게 여긴 학생들이 민원을 넣는 바람에 직위해제라는 말도 안 되는 처분이 내려진 문제의 영화 제목, ‘Oppressed Majority’의 한글 번역이 ‘억압받는 다수자’이다. ‘억압받는 다수자’는 남성을 뜻한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이게 잘못된 번역이라 생각했다. 지구상에 남자와 여자가 수적으로 거의 50대 50인데, 다수자-소수자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Sociology]에서 관련 내용을 읽으면서 내가 잘못 알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 뉴스에서 트랜스젠더로서 숙명여대에 입학한 화제의 주인공이 “내가 사회적 다수자인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인권을 위해 내 입학은 불허돼야 한다는...”이란 말 속에서 ‘다수자’라는 용어를 접하면서 이 글을 쓴다. 아마 독자들도 나처럼 ‘다수자’란 개념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배움의 여정에서 새로운 진개념을 하나 얻는 것보다 기존의 오개념을 고쳐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모른다고 생각할 때는 겸손을 유지하지만, 잘못 알고 있을 때는 엉터리 자기확신을 바탕으로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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