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741

타인을 위한 메타인지

늘 가던 미장원이 문을 닫아 다른 곳을 찾았다. 둘 다 집 근처에 있는 남성전용 미장원이다. 내가 입장 했을 때 한 사람이 머리를 깎고 있었다. 내 순서가 돼서 미용 의자에 앉아 내 폰에 저장해둔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깎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주인아주머니가 불쾌하다는 듯이 “나는 이렇게 못 한다. 다른 미장원에 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려 보건대, 내가 까다로운 스타일을 제시해서가 아니라 사진을 보여주며 주문하는 태도를 못마땅해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아주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그리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니, 이 사진과 비슷하게 대충 깎아주시면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분은 “이렇게 여러 말이 오가게 하는 자체가 까다로운 것”이라며 막무가내..

삶과 교육 2020.08.02

5.18과 교사 역사인식의 중요성

오늘은 광주민주화항쟁 40주년 기념일이다. “80년 5월 광주가 피 흘리고 죽어갈 때 광주와 함께하지 못한 것이 그 시대를 살았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공권력이 광주에서 자행한 야만적 폭력과 학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대표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 작년 5.18 기념사에서 대통령의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오늘 기념사에서는 또 “왜곡과 폄훼가 더 이상 설 길이 없어질 것”임을 힘주어 말씀하셨다. “더 이상 설 길이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비장한 언설은 80년 광주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진행 중임을 방증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교육의 기회가 없는 기성세대의 경우 ‘의식의 전환’은 거의 불가능하다. ..

9월 학기제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호주만 3월 학기제를 하고 있다. 호주는 남반구에 위치해 우리와 사정이 다르고 북반구의 두 나라 가운데 일본은 이번에 9월 학기제로 개편하겠다고 한다. 이에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9월 학기제 개편 문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건 코로나와 무관하게 치밀한 계획과 로드맵 하에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온라인수업이지만 학기가 이미 시작되었는데, 지금까지의 학사일정을 무효로 하고 9월 학기제로 가자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1. 9월 학기제 개편이 언제 확정될지 모르지만, 아마 그 시점에는 이미 1학기 공부가 끝이 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9월에 똑같은 교과서로 1학기 공부를 다시 배운다? 상식적으로나 교육원리 상으로 있을 수 없는 ..

삶과 교육 2020.08.02

오래 만나고 싶은 아이들

어제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재작년 도량초 학부모님인데 사연인즉, 다가오는 아이의 생일 때 내 책의 사인을 받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는 내 첫 저서 [교사가 교사에게]는 내가 담임할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뜻깊게(?) 읽었고, 두 번째 저서 [학교를 말한다]는 나와 헤어질 무렵 구미 서점에서 구입하였다. 이 책은 초3 아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어서 부모님께서 읽으셨고 아이는 저자이자 (자신이 좋아하는)담임선생님의 사인을 받는 것을 소망한다는 말씀이었다. 아이와 부모님의 마음이 가상하여 흔쾌히 가겠다고 답했다. 마침 스승의 날이다.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교사들을 배려하여 “은사님 찾아뵙기”라는 명목으로 조퇴 달고 일찍 나가라고 하시길래, 나는 은사 대신 제자를 만나기 위해 교문을 나섰다...

교실살이-1 2020.08.02

글쓰기와 메타인지 역량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렸을 적이니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거실에 어항을 꾸며 놓고 싶어서 동네 수족관 집을 찾았다. 어항 세트와 열대어를 고른 뒤에 주인아저씨로부터 어항을 관리하는 요령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으로 수질 관리를 위해 무슨 약품을 며칠 만에 투입하라는 내용은 종이에 적어주셨다. 그런데 집에 와서 종이를 펼쳐 보니 조금 전에 말로 들었던 내용과는 다르게 적혀 있었다. 1달 14 ‘이상하다. 아까는 분명 한 달에 한 개씩 넣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14개라니...... 그리고 10개면 10개지 14개는 또 뭔가?’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이 풀렸다. 아저씨가 내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 속의 숫자는 14가 아닌 1이었다. 그 분은 “한 달에 하나”라는 뜻으로 “1달 1..

학습에 대한 갈증

2교시 수학 시간이었다. 마침 시간이 다 돼 가는데 과제 올라온 아이가 딸랑 2명뿐이었다. 40분 수업에 보통 20분 지나면 과제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 경우도 아주 앞서 가거나 성의 없이 대충 해내는 아이들이고 평균적으로 30분이 지나 해내는 경우가 많다. 슬로우 러너들은 40분 마칠 때까지 못 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20분쯤에 올라오기 시작하는 게 정상인데 30분쯤에 올라왔으니 과제 양이 많았다는 판단이 서는 것이다. 반성하는 마음에서 과 같은 글을 올렸더니, 아이들의 반응이 놀랍다. 과제 안 줄여주셔도 되는데.. ㅎㅎ 안 힘들어요. 하트 하트 하트 감사합니다 안 힘들어요 지금도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조아유 지금 그대로 해주세요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이 신통한 건지? 코로나가 가져온 기현상인지? 과제 ..

온라인 개학

긴장 속에 치른 온라인 개학, 한마디로 대성공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우리 학교는 화상 라이브가 아닌 수업 콘텐츠 업로드와 실시간 과제 점검 방식의 수업이다. 다른 학년과 달리 우리는 네이버밴드를 이용했는데, 위두랑보다 이게 훨씬 좋다. 그리고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콘텐츠 중심 수업이 화상수업 보다 학생성장에 훨씬 이롭다. 온라인 수업의 이모저모에 대해서는 1주일 길을 가보고 주말에 심도 있게 논하겠다. 12월말에 겨울방학에 들어가 2월에 1주일 학교 나오고 어제 개학했으니 거의 4개월 만이었다. 온라인이어서 얼굴도 목소리도 접할 수 없었지만 네이버를 매개로 주고받은 댓글을 통해서도 아이들의 반응이 생생히 전해져왔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어제 아이들 집단의 풍경은 흡사, 공장형 축사에 ..

교실살이-1 2020.08.02

빨리빨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한국(Korea)에 관해 3가지 키워드로 소개한다. 첫째가 한글(hangeul), 둘째가 김치(gimchi) 그리고 마지막이...... 빨리빨리(pali pali)다. 사실인지 확인은 안 해 봤지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20년 전 쯤일 것 같다. 이 정보를 접하는 순간,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고 마지막 것은 부끄러움과 함께 어떤 성찰이 일게 했다. 숲 속에 있는 사람은 숲을 볼 수 없는 법. 그때까지 외국인에게 비친 우리 국민의 자화상이 ‘빨리빨리’로 표상될 줄은 몰랐다. 난생 처음으로, 우리가 너무 바삐 산다는 각성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는 머리로 이해했지만, 한 10년 뒤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갔을 때 그 사실을 몸으로 알 수 있었다. 보통 첫 해외여행..

삶과 교육 2020.08.02

타지역, 타국민에 대한 혐오를 멈추자

총선 이후 자칭 진보들의 TK 공격이 집단광기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어느 여성 시인은 아예 ‘TK=토착왜구’라는 프레임을 유포하며 경상도를 우리 국민 아닌 적국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역감정을 넘어 민족감정으로 TK를 대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대혁명기의 홍위병을 연상케 하는 이 집단적 광기를 보면서 이 나라에 깊숙이 드리워진 파시즘의 징후에 오한이 느껴진다. 나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파시즘 팬데믹이라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함께 가고 있다. 여기엔 필연적인 요인과 우연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파시즘은 본디 국가적 위기를 배경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국가가 어려울 때 파시스트들은 국민대중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희생양을 찾는다. 공교롭게도 코로나가 급격히 확산된 진원지가 대구였다. 그..

진보와 보수

총선 결과에 대해 크게 승리한 정부 여당이 애써 기쁨을 감추며 코로나로 인한 경제 살리기가 급하다며 진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나, 충격적인 참패의 쓴맛을 본 보수 야당이 패배의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나름 진지한 자기성찰 모드로 들어간 것 둘 다 보기 좋은 일이다. 민주당에겐 축하를, 미통당에겐 격려를 보낸다. (통상적인 시각과는 반대로 나는) 이른바 진보/보수를 떠나 정치인들의 수준은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시민들은 여전히 지독한 배타정신에 입각한 “아전인수” 격의 평론이 지배적인 것에 큰 아쉬움 느낀다. 특기할 만한 점은, 자칭 진보 성향 사람들에게서 이런 자기중심주의적 경향성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그냥 배타적인 게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혐오정서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집단적 광기가 소름끼쳐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