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빨리빨리

리틀윙 2020. 8. 2. 00:44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한국(Korea)에 관해 3가지 키워드로 소개한다.

첫째가 한글(hangeul), 둘째가 김치(gimchi) 그리고 마지막이...... 빨리빨리(pali pali)다.

 

사실인지 확인은 안 해 봤지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20년 전 쯤일 것 같다. 이 정보를 접하는 순간,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고 마지막 것은 부끄러움과 함께 어떤 성찰이 일게 했다. 숲 속에 있는 사람은 숲을 볼 수 없는 법. 그때까지 외국인에게 비친 우리 국민의 자화상이 ‘빨리빨리’로 표상될 줄은 몰랐다. 난생 처음으로, 우리가 너무 바삐 산다는 각성이 일기 시작했다.

 

그때는 머리로 이해했지만, 한 10년 뒤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갔을 때 그 사실을 몸으로 알 수 있었다. 보통 첫 해외여행으로 가까운 중국이나 동남아를 많이 가지만 나는 영어교사 연수 코스로 무려 한 달 간 “미쿡”에서 지냈다. 관광지만 둘러보는 패키지 여행이 아닌 미국인의 삶에 나름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보였다.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알게 되었다. 해외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실감났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무엇이 왜 좋은가를 말하라면, ‘pali pali’라 하겠다. 이 나라에서는 맥주 집에서 안주를 시키면 술 다 마시고 일어설 때쯤 테이블에 도착한다. 쇼핑몰에서 산 시계가 문제가 있어서 환불 요청했는데 한국 같으면 며칠 만에 해결될 일이 한 달 넘게 걸려 귀국 한 뒤에 결과를 통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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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발원지인 중국이나 동양보다 서양에서 더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역사는 영어로 history인데, 그의(his) 이야기(story)이다. 여기서 ‘그’는 백인이다. 서양 사람들이 큰 불편을 겪을 때 ‘스토리’로 부각된다.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코쟁이들이 동양의 작은 나라 코리아를 주목하고 있다. 자기네들은 도저히 범접 못하는 한국인의 경이로운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힘의 원천은 다름 아닌 “pali pali”다. 한국의 의료기술이나 인프라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확진자를 가려내는 엄청난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좀 전에 DAUM에서 "자정에 주문하면 새벽에 딩동 물건이 배달되는 한국의 초고속 택배문화"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미국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국뽕에 취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한국인들 정말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봉준호도 그렇고 요즘 대한민국 정말 자랑스럽다.

 

하지만, 사물은 항상 두 측면을 지닌다. pali pali의 이면에 있는 한국의 현주소도 읽어내야 한다. 택배문화도 코로나 진단키트도 세계 최고지만, 자살률 또한 OECD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국이다. 40분마다 한 명씩 자진해가는 사회다. 이 우울한 단면은 ‘빨리빨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초고속 택배문화가 자랑은 아니다. 퀵서비스 라이더들이 신호 무시하고 분초를 다투며 배달하는 과정에서 사망률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자진이든 산업재해든 사람 생명을 대가로 이뤄진 경제성장은 자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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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인디언은 급히 말을 몰다가도 한 번씩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너무 바삐 달린 나머지 자기 영혼이 못 따라올까봐 걱정하는 마음에서라 한다. 내 초임 시절인 80년대 말에 비해 지금 국민소득은 3배로 뛰었다. 빨리빨리 국민성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 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보다 지금 아이들은 3배로 불행하고, 교직사회도 그만큼 더 메마른 느낌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 한국이 뜨고 있다고 해서 우쭐해 할 일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삶은 천천히 우리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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