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교육

코로나

리틀윙 2020. 4. 4. 21:00

발달단계상 3학년은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여서 질문을 많이 해온다. 무릇 배움은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지라 아이들이 교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너무 왕성한 것이고 또 시도 때도 없이 질문 홍수가 터져 간혹 수업 진행에 차질을 빚는 점이다.


개학 첫날인 어제는 한 아이가 “선생님, 코로나바이러스 이름이 왜 코로나예요?” 라고 묻는다. 급식소에서 줄 서 있던 상황이어서, “나도 모르는데, 나중에 밥 먹고 알아봐줄게”라고 대답하고선 구글 검색을 통해 안 것을 수업시간에 전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었다.





‘corona’는 라틴어로 ‘왕관’이란 뜻이다. 여기서 파생된 영단어가 ‘크라운crown’이다. 예전에 크라운 맥주 로고가 왕관 모양이었다.


칠판에 왕관 모양을 그린 다음, 구글 검색으로 coronavirus를 쳐서 바이러스 세포 사진을 보여 주면서, “둘이 닮았지?”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안 닮았는데요?”라고 한다. 


나: 야! 닮지 않았냐?

아이2: 안 닮았는데요?

내가 허탈해 하니까, 아이3이 “좀 닮은 것 같기도 해요”라고 나를 도와준다. 이쁜 녀석^^

교사인 게 좋은 것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학생이 교사를 성장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4교시 수업 마치고(3학년은 3교시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아이들을 보낸 다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코로나바이러스 이름이 왜 ‘코로나’인지 의문조차 품지 않았는데, 아이의 도움으로 알게 되고 또 아이의 궁금증을 해소해줬다는 어떤 나르시시즘에 잠시 빠졌다. 그러다가 문득 “안 닮았는데요?”라던 아이들의 반응과 ... 급식소에서 질문하던 아이 옆에 있던 아이가 “코로 숨 쉬어서...”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뿔사!

코로나가 크라운과 관계있다?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다??????


아이의 호기심은 이런 것과 관계없다. 아이의 질문 포인트는 ‘코로나’의 ‘코로-’에 있었다!


물론, 나의 설명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틀린 설명은 더더욱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명했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않은 것이다. 즉, ‘(입이 아닌) 코로 숨을 쉬어야 해서’ 코로나인 것이 아니다. ‘코로-’는 우리말이 아니라 영어(라틴어)라는 것을 짚어줬어야 했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왕관 모양과 닮았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우유 입자’ 사진과 비교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내 머리 속에는 크라운맥주 로고나 우유 입자 따위가 이미 입력되어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러하지 않은데, 공모양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왕관과 비슷하지 않냐고 우긴 것도 불찰이다.


초3인데, 대3에게나 적절할 설명을 해놓고서 “성공적인 과업완수에 대한” 자아도취에 빠졌던 게 부끄럽다. 오늘 다시 설명해줘야겠다.





1학기에 옆 반 선생님이 멘붕에 빠졌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수학 수업에서 세자리수 덧셈 가르칠 때였다.

밭에서 고구마를 어제는 125개를 캐고 오늘은 237개를 캤습니다. 어제와 오늘 모두 “캔 고구마는” 몇 개입니까? 라는 문제에서... 한 아이가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쓸데없는 질문으로 하고한 날 수업의 맥을 끊어오는 악동이라 한다 ㅎㅎ)


선생님, 캔 커피, 캔 맥주는 들어봤어도. 캔 고구마는 처음 들어보는데요? 캔 고구마라는 것도 있나요?@$%%^&**????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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