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개학 했다.
어제 집에 있는데 학교 행정실에서 전화가 와서 “도서관 책걸상 치워야 하니, 선생님이 드리려 한 분들에게 연락해서 빨리 가져가든지, 아니면 새 물품 공급업자가 무료로 치워주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애초(12월)에는 “학교에서 책걸상을 돈 주고 폐기해야 할 입장이니 혹 주변에 필요한 사람 없냐?” 하길래, “그러면 내가 알아보겠다. 물건이 충분히 쓸 만하니 아마 가져갈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내가 좀 수고스럽더라도, 학교도 돕고 또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페이스북에 사진과 안내 글을 올리니 1시간 만에 희망자들이 꾸려졌다
그런데, 지금은 업자들이 공짜로 치워주겠다고 하니 내게 급하게 치워달라고 해서 좀 당황스러웠다. 전화 끊자마자 당사자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내일 오전까지 와달라고 말씀드렸다.
오늘 개학하고 행정실에 갔더니, 실장님께서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도 있고 하니 오전 보다는 학생들이 하교 한 뒤 오후에 가져가게 하는 게 어떻겠나?” 하신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어 오후에 와달라고 부탁했다.
이때부터, “지금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아이들 인솔해서 급식소로 향하는데 행정실에서 내 폰으로 전화가 왔다. “교장선생님께서, 오늘 말고 내일 가져갔으면 한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담당자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라 하고, 급식소에서 마주친 행정실장님 말씀으로는 “학교 아이들이 도서관을 이용하는데 탁자가 왕창 빠져나가고 텅 비어 있으면 보기 안 좋을 것 같아서” 라고 한다
어떤 이유든 말이 안 되는 것이,
1)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면, 오늘은 안 되고 내일은 된다는 게 납득이 안 가고,
2) 지금은 단축기여서 전교생이 점심 먹고 다 집에 가고 도서관은 문이 잠겨 있는데...?
씁쓸한 마음을 삭이며 또 전화를 걸었다. “죄송하지만... 내일 와주셔야 겠다”고...
가져가실 분이 세 팀인데, 두 팀은 양해를 구했으나 한 팀은 “트럭을 다른 곳에서 빌려 쓰는 입장이어서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정 안 되면 포기하겠다”고 하신다.
오늘 가져가는 것도 문제지만, 안 가져가면 머리가 더 아프다. 업체에 전화해서 가져가라고 해야 하니까. 그리고 그 단체에 기대를 하게 해놓고서 학교측이 이랬다 저랬다 해서 포기하게 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책임은 교장도 실장도 아닌 내가 져야 한다.
“지금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자괴감이 점점 증폭된다.
그래도 아직 수습의 희망은 있다. “헛짓이든 뭐든 이왕 고생하는 것 모두가 좋도록 협상력을 발휘하자”고 자기규율을 발동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마침 이 팀은 테이블을 한 개만 가져가신다. 해서, 교장실 문을 노크했다. 웃음 지으며, “도서관 책걸상 문제로 상의 드리러 왔다”고 운을 띄운 다음, “죄송하지만, 한 개만이라도 오늘 가져가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신다.
민주노총 ㅊ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럭이 도착하고 교문 앞에 가서 행정실장님에게 인사시킨 다음 도서관으로 가서 짐 싣는 것을 도왔다.
이런 식으로 내일 두 팀을 더 맞이해야 한다.
“지금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지론이 그렇다.
사람은 오지랖이 넓어야 한다. 자기한테 아무 이득이 없는 일에 몸을 던질 줄 알아야 인간답게 사는 게다.
그나저나 학교에 낭비가 너무 심하다. 예전에는 학교가 참 가난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한민국 돈이 전부 학교로 몰리는 듯하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못 썼고 지금은 너무 많아서 탈이다.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멀쩡한 전자제품이나 가구를 폐기하고 새 것으로 교체하곤 한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충분히 쓸 만큼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학생들에게 좋은 본일 수 없다. 이 이유 한 가지만으로도...... “지금 내가 하는 짓은” 옳은 일이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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